가족이란 무엇인가요?

by 힉엣눙크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가 내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 아마도 처음인 것 같았다. 대개는 여동생이 전화를 걸어서 대화하다가 바꿔줘서 통화한 기억밖에는 없는데 제 전화로 직접 걸어오니 반가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배경이 궁금했다. 안부를 묻는 의례적인 대화가 오가고 난 후 조카는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무슨 인터뷰냐고 물으니 학과 교수가 가족을 주제로 한 인터뷰를 여덟명 이상과 진행하고 결과를 제출하라는 과제를 내주었다는 것이었다. 조카의 인터뷰 대상자 목록에 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다음날 점심 약속을 정했다.


조카는 껑충하게 키가 컸다. 자그마한 여동생과 같이 서면 엄마와 딸이 뒤바뀐 것 같이 보였다. 이제는 나랑 키가 비슷해진 어린 조카의 볼에는 아직 솜털이 보송했다. 이제 막 바람을 힘껏 불어넣어 탄력 있게 튀어 오르는 공처럼, 바람을 맞으며 솟아오르는 연처럼 조카는 어느새 스무 살이 되었다. 자랄 때는 머리를 길게 기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짧은 머리를 고집했다. 제 취향이 아니라 여동생의 고집이었을 것이다. 말수가 적었다. 명절에 우리 집에 오면 TV를 보거나 핸드폰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집에 기르는 고양이의 안부를 물으면 그제야 하얀 이를 드러내고 미소지으며 얘기하곤 했다. 말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남들보다 두 배는 시간이 걸렸다. 뜸을 들여 말했고 삼키기 전에 충분히 씹었다. 전화를 끊고서 나는 조카와 예정된 식사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지금과 다른 근무지에 있을 때였다. 아침 일찍 사무실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면 항상 마주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두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비틀거리며 걸었다. 한 명은 머리가 하얗게 세서 칠십 대쯤 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귀밑머리가 희끝한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을 보니 둘이 부자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들은 소아마비인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을 아침마다 팔짱을 끼고 운동을 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도로에 쓰러지지 않도록 꼭 잡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는 아비의 얼굴에는 세월의 골이 깊게 패 있었다. 미간을 살짝 찡그린 표정으로 눈동자를 멀리 고정한 채 걷는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아들을 그러안고 헤쳐온 그의 지난날들이 어떠했을지 감히 어림할 수 없었다.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가 있었다. 평생 외면받던 고흐의 작품 세계를 유일하게 인정해주었고 끝까지 재정적으로 지원했던 사람이 바로 동생 테오였다. 600통이 넘는 편지를 서로 주고받았고 고흐가 정신병으로 고통받아 고비를 맞을 때마다 그를 보살폈으며 자신에게 아들이 태어났을 때 형의 이름을 따서 빈센트 반 고흐 주니어라고 이름 지었던 테오. 1890년 고흐가 숨을 거두자. 테오는 자신의 파리 아파트에 고흐의 그림 350점을 전시하는 회고전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그는 형이 죽은 지 6개월 후 서른넷 나이로 형을 따라갔다. 형제는 나란히 곁에 묻혔다고 한다.


단호박 오리찜을 오랫동안 오물거리며 맛나게 먹고 나서 조카는 아이패드를 꺼냈다. 식후 차를 마시던 내게 초롱한 눈망울을 한 채 질문을 던졌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요?”


혈연ㆍ인연ㆍ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무리이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의 집단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운명으로 얽힌 관계”라고 짧게 말했다. “가까워서 편하고 또 가깝기에 상처를 주는 관계”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모자라서 잠시 생각했다.


“서로를 길러주는 사이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카가 안경을 손등으로 밀어 올리며 물었다. “부모가 길러주긴 하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잖아요?”


나는 잠시 테이블 위에 놓인 자그마한 찻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모두 인생이라는 강 위에서 조금씩 자라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해. 노인이든 어린이든 마찬가지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지혜가 쌓여도 삶의 강은 깊고도 넓어. 그래서 경험하고 아파하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는 것 같아. 점차 커지는 거지.”

조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길러줘야 하죠? 자신이 알아가는 거라면서요?”라고 되물었다.

“살아간다는 건 그 속에서 아파한다는 거야. 거친 파도를 힘겹게 헤엄쳐 건너가는 데 힘과 용기를 주고 위안이 되어 주는 존재가 필요해 그게 바로 가족인 것 같아.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이해해 주는 것 그걸 나는 기른다고 말했던 거야.”

조카는 가족의 ‘기능’과 ‘역할’ 그리고 미래의 가족 구성에 대해 질문을 이어나갔다. 나는 공자왈 맹자왈 그럴듯한 말들을 주억거리며 계속 내 얘기만 해댔다. 그렇게 훌쩍 한 시간이나 흐르고 말았다. 조카는 준비된 질물을 모두 던졌고 나의 대답을 메모했다. 휴대전화로 내 사진을 찍으며 우리의 인터뷰는 마무리되었다. 식당 문을 나설 때 나는 꼰대처럼 쓸데없는 말만 많이 한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이번 주말 친구들과 야구경기를 보러 간다는 조카를 캠퍼스까지 데려다주었다. 통통 튀어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고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는 벌써 노랗게 단풍이 들고 있었다. 베리 매닐로의 “When October goes”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시월의 나무들처럼 내 머리도 어느새 희끗하게 인생의 단풍이 들고 있다. 하지만 시리도록 푸른 하늘은 나이만 먹었지 제대로 철이 든 게 아니지 않냐며 내게 물었다.


아마 지금쯤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기러기 가족들이 하늘 높이 떠서 넓은 벌판과 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함께 찾아든 기러기들이 찬 바람 몰아치는 주남저수지를 가득 메우게 되리라. 샛별이 뜬 캄캄한 하늘 위로 끼룩거리는 울음소리들은 서로의 온기를 전하며 따스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조카와 다시 인터뷰한다면 앞의 말들은 싹 지우고 새로이 얘기해 주고 싶다.


“가족이란 순두부처럼 물컹하고 강아지 귀처럼 부드럽지. 겨울날 화로처럼 따뜻하고 가을 산국의 향기처럼 은은해. 오래된 문고리처럼 익숙하고 소파처럼 지친 몸을 기댈 수 있는 것.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어느새 흘러내려 짭조름한 눈물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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