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신은 채 집안으로 들어섰다. 안방에 있던 엄마의 장롱과 선반이 사라지고 없었다. 작은 방에도 못 보던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마루는 뜯겨 사라졌고 콘크리트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니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는 사라지고 대신 커피머신과 차곡차곡 쌓인 컵만 보였다. 다른 한 편에는 커피의 종류와 가격이 적혀있는 보드가 매달려 있었다. 그 옆에 웬 낯선 여인이 나를 보며 서 있었다. 우리 집에서 이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수십여 년 살았던 옛집을 다시 찾았던 건 최근 그 근처에 소재한 사무실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여유가 생겼다. 나의 발길은 어느새 옛집이 있던 동네로 향하고 있었다. 이사를 간 이후 이곳으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었다. 아니 외면했었다.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후회스러운 나의 과거를 돌이키고 싶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익숙하던 오래된 건물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없고 어느새 새로운 건물들이 불쑥 들어서서 낯선 모습이 되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몇몇 건물들이 이정표 역할을 해주는 바람에 내가 살던 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나의 옛집. 대문과 담장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문 옆에 있던 화장실은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깔끔하게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외벽에는 ○○카페라고 세련되게 표기되어 있었다. 건물의 골조와 외관은 거의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70년대 중동 건설붐 그리고 모더니즘 양식의 영향으로 지어진 건물. 평평한 지붕과 옥상 그리고 조그만 사각형의 욕조 타일로 장식된 외벽 등 중동의 분위기가 희미하게 밴 모습은 그대로였다. 나는 홀린 듯 마당으로 들어서서 현관문을 열었다. 나도 모르게 ‘다녀왔습니다’하는 말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올 뻔했다.
메뉴판을 바라보던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낯선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서둘러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안방 자리의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문과 벽은 사라지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집안은 온통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짙은 갈색의 마루와 천장의 나무들도 모두 사라지고 노출된 그 텅 빈 공간에도 역시 흰색이 칠해져 있었다.
마루를 딛는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큰 걸 보니 여동생일 것이다.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다들 방에서 나와 ‘잘 다녀오셨습니까?’하고 인사를 했다. 안방에 밥상을 들이고 아랫목에 옹기종기 앉아서 저녁을 먹는 식구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찬찬히 내려보았다. 고등어구이와 나물무침, 그리고 김치와 된장찌개의 냄새가 코에 훅 끼쳤다.
커피잔을 들고 작은방에 들어섰다. 할머니는 아랫목에서 양말을 기우고 계셨다.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놀리시던 할머니. 흥얼거리는 자장가 소리가 귓가에 아련하다.
공부방에서는 초등학생이던 나와 여동생 그리고 막내 남동생이 바닥에 퍼질러 누워서 각자 딴짓들을 하고 있었다. 나는 만화책을 읽고 있었고 여동생은 종이 인형을 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동생은 산수책과 공책이 놓인 개다리소반 밑으로 기어들어가서 까무룩 잠이 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드르륵‘ 안방의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와 여동생은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마루를 밟는 아버지의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고 공부방 문이 활짝 열렸다. 그제야 잠이 깨서 벌떡 일어나던 남동생은 개다리소반에 ’쿵‘하고 머리를 찧었다. 나와 여동생은 키득이며 웃었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피러 왔던 아버지도 그만 웃음보가 터졌다. 그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데 방에는 아무도 없고 한가운데 테이블과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교복을 입고 대문을 나서던 설렘. 엄마가 돌아가시고 홀로 방 안에서 흘리던 눈물. 대학교에서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그리며 가슴 설레던 청춘의 시간. 젊은 날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나의 영혼. 노래를 부르며 달래던 서럽던 날들. 가족들과 함께했던 그 무수한 밥상머리의 기억들. 이 모든 추억들이 마루에 들기름 먹이듯 배어 있는 그 오래된 집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마당에 한동안 앉았다. 마치 오래전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듯 나는 추억과 회한이 가득한 옛집의 모습을 그저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나는 추운 줄 몰랐다. 내내 뜨겁고 훈훈한 뭔가가 나를 에워싸고 있는 듯했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손에 쥐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잔을 카운터에 돌려주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여기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많이 변했지만 이 집은 그대로네요. 외형과 구조를 살리는 리모델링 덕분에."
낯선 여인이자 새로이 이 집의 주인이 된 여인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시간대에 남자분 혼자 오는 경우는 없어서 이상하다 했는데. 어쩐지... 이 동네 살았던 분이셨군요."
나는 ’ 바로 이 집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말하진 않았다. 그 여자에게 당혹감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동네는 주택단지였기 때문에 구조가 모두 똑같았죠. 옛 모습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어서 반갑고 또 고맙네요."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남편과 함께 이 집을 사서 직접 꾸몄어요." 여인은 수줍은 듯 웃으며 대답했다.
떠나기 전에 인사했다. "번창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정말 그 주인 부부가 진심으로 그러길 바랐다.
지금도 꿈을 꿀 때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어릴 적 살았던 그 집이 무대가 되곤 한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분들과 나는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꿈속에서는 돌아가셨다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지금 함께 있는 듯 생생히 말이다.
집이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우리는 기대고 드러눕고 울고 웃는다. 마치 지우개가 노트에 제 몸을 문질러서 갈아내듯이 우리는 몸과 시간, 세월과 기억 그리고 상처를 그곳에다 문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 공간은 우리와 하나가 된다. 꿈속에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곳이 사라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립든 고통스럽든 우리의 그 오래된 집으로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야 만다. '발은 떠나도 마음은 떠나지 않는 곳이 우리의 집이다.'라고 했던 19세기 미국의 의학자이자 문필가였던 올리버 웬델 홈스의 말처럼.
사무실로 향하는 나의 걸음이 옛집으로부터 한 발 한 발 멀어질 때마다 나는 가슴 한 귀퉁이가 조여지면서 목이 뜨거워졌다. 거리에 부는 겨울 찬바람 속에서 구 도심의 그 동네는 조용히 그러나 나지막이 숨 쉬고 있었다. 누구에게는 빈티지 공간으로 여기질 곳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저미는 공간이 마산 어느 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