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을 밟아 보았니?

by 힉엣눙크

한겨울에 꽃이 피었다. 사람의 머리에 커다란 꽃이 피었다. 노랗고 빨갛고 파랗고 하이얀 꽃이 활짝 피었다. 꽹과리, 북, 장구, 징 소리 모두가 어우러져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졌다. 두둥 당당 둥두 당당~

온 세상 차가운 겨울,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달, 꽁꽁꽁 얼어버린 차가운 대지 위에 사람들이 모여서 열기로 하나 되어 발을 구르며 땅을 누른다. 지신의 심술을 누그러뜨린다.


여기 이 삶터에서 또 한 해를 살아내자고 신산한 고갯마루 너끈히 이겨내자고 소외되는 사람 없이 다 함께 행복하자고 한 사람 두 사람 여러 사람 한데 모여 흥겨운 가락과 신명 난 장단에 덩더꿍 춤을 춘다. 집주인도 이웃집도 서로서로 응원하며 한가득 복이 넘치는 희망을 노래한다. 어깨춤이 덩실덩실 저절로 일어난다.

도심에서 지신밟기 행사를 지켜보았다. 인구도 적은 데다가 장구를 멜 힘도 없는 노인들만 남은 농촌에서는 더 이상 농악이 울리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골에서도 자취를 감춘 지신밟기 전통놀이가 남부지방 도심에서 오히려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풍물단 프로그램이 읍면동 주민자치센터에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시골에 살았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마을의 축제는 단연 지신밟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떠들썩하게 농악을 울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아이들은 덩달아 신이 나 농악대를 뒤따랐고 장단에 맞춰 깡총거렸다. 설날부터 정월대보름 사이에 농악은 오래오래 온 마을을 울렸다. 농한기에 사람들은 그 기간 내내 먹고 마시고 즐겼다. 콤콤하면서 들금한 냄새가 나는 광에는 지짐이며 단술이며 강정 등이 쌓여 있어 할머니 몰래 야금야금 내어 먹기도 했다.


옛날 터밟기를 할 때면 풍물패는 집집마다 마당, 뒤뜰, 부엌, 변소, 장독대 등을 돌며 성주신을 비롯한 가신(家神)들을 위무했다. 국민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밟을 지신이 없어서 그런지, 미신이라 여겨서인지, 마을공동체 개념이 오래전 사라져서인지,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여유도 없어서인지 오늘날 지신밟기가 행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파트에서 지신밟기를 한다 해도 문제다. 소음민원이 들어오거나 아랫집 사람이 분노한 지신처럼 올라와서 멱살을 잡을지도 모른다. 층간소음으로 갈등을 빚다가 참극이 빚어지는 경우가 종종 뉴스에 나오는 세상이니 그 정도에 그치는 건 다행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함께한 도심 속 지신밟기 놀이에서는 어릴 적 보았던 그 흥성하고 끈끈하며 해학적인 맛은 없었다. 서로의 숟가락 개수도 훤하게 알고 있던 조그만 마을에서 쌀을 더 달라는 풍물패와 집주인의 밀고 당기는 촌극과 정감 어린 농지거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에서 인류가 가지고 있었던 리추얼(의례)이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소멸했다고 진단했다. 사람들을 하나로 묶고 공동체 속에서 일체감을 느끼게 하여 구성원들이 소외감 없이 지낼 수 있게 했던 그 옛날의 문화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자본의 노예가 되어서 개별화되었기 때문에 리추얼을 다시 복원하고 계승한다고 해도 그건 단지 빈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 아침 아내와 나는 우리들만의 지신밟기를 했다. 노래를 부르고 신나는 음악을 틀어서 함께 춤도 추었다. 양손을 잡아 억지춤을 추게 하자 어이없어 혀를 차던 아내도 이윽고 깔깔깔 즐겁게 웃었다. 올 한 해 건강하게 잘 지내자고 아픔도 불안도 모두 훌훌 벗어버리자고 두둥짝 스텝을 가볍게 밟았다.


두둥 당당 둥두 당당~ 나쁜 기억과 오랜 감정을 눌러보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미움과 질시도 잠재우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나와 남을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곰삭히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내 입장만 고집하는 이기심도 꺾어내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이 모든 것들을 굼실거리며 밟아보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희망찬 생각을 한가득 떠올리며 방을 디디고 마당을 걸어보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올 한해 세상의 모든 가정이 안녕하고 행복해지기를 기원해 보자. 두둥 당당 둥두 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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