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편지에 뭐라고 답을 할까?

by 힉엣눙크

어지러워진 책장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책갈피 사이에서 뭔가 툭하고 떨어졌다. 주워보니 어린아이의 그림이었다. 색연필로 알록달록 그려진 세상이 펼쳐졌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손을 맞잡고 있고 하늘 위에는 온통 꽃의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우주선이 떠 있고 별이 있고 무지갯빛으로 반짝이는 지구가 그려져 있었다. 흰 종이를 조그맣게 접은 카드도 있었는데 표지에 ‘생일 축하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오래전 아내의 친구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 함께 온 자녀들이 전해준 것들이었다. 빙그레 미소가 그려지고 맘 한구석이 따스해져 오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사무실 근처를 산책하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근처 초등학생들의 그림들을 본 적이 있다. 시청과 학교가 협업하여 삭막한 도심 속에 아이들의 세상을 펼쳐 놓았다. 지나가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림 하나하나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지구를 지키자는 내용이었다. 기후위기에 행동으로 나서 줄 것을 호소하는 그림들이었다.


이전에는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종종 겨울이 혹독하게 춥기도 하고 여름에는 오히려 서늘한 경우도 있어서 온난화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런 혼란을 줄이기 위해 이제는 지구 온난화보다는 기후위기 또는 기후변화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말이 있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에선 농부들이 경쟁적으로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오는 것이 이득이므로 그 결과 방목장은 곧 황폐화되고 만다는 걸 경고하는 개념이다. 모두의 땅은 곧 누구의 땅도 아니므로 사람들은 제 이익 챙기기에 바빠서 결국 모두의 불행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리라.


기후위기가 공유지의 비극처럼 막을 내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에게 보내온 꼬마 아가씨의 생일축하 카드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지막 문장에 눈길이 멈췄다. ‘2105년 5월 지안 올림’ 아마도 2015년을 2105년으로 잘못 적었던 것이리라. 2105년, 즉 22세기에도 인류는 살아남아 있을까? 아니면 아마겟돈의 세상 속에서 근근이 생명의 끈을 이어가고 있을까?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 푸르고 더 아름답고 훨씬 쾌적한 환경에서 다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미래에서 온 편지에 답을 하고 싶었다.


"2105년을 살아가고 있을 지안이에게.


네가 지금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면 난 너무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할 거야. 그렇다면 이 편지 읽기를 그만두고 당장 찢어버려라. 하지만 만일 디스토피아에서 암울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지안아 정말 미안하다. 기후위기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고 가스레인지로 요리를 해왔다. 대중교통 이용보다는 가솔린과 디젤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하고 주말에는 여기저기 많이도 돌아다니면서 탄소를 배출해 왔구나. 비행기 귀신이 씌었는지 해외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다. 컵 씻기 귀찮아서 1회용 종이컵을 사용하고 1회용 포장재와 도시락도 셀 수 없을 만큼 소비했단다.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고기의 소비를 줄이지도 못하고 삼겹살을 너무 자주 구워 먹었다. 습지나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지도 못했고 기후변화 대응을 우선시하는 정치인에게 투표해서 힘을 실어주지도 못했다. 미안하다 지안아. 못난 삼촌이 정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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