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인이 녹색 신호가 들어왔는데도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출근길에 학교 앞 횡단보도 정지선에 멈췄을 때였다. 운전석 너머로 보이는 저 여인은 왜 건너가지 않을까? 누구를 기다리나?
그녀의 시선은 뭔가에 붙박인 듯 고정되어 있었다. 반대편을 보니 초등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앳된 꼬마 아이가 교문을 막 들어서고 있었다. 제 키만 한 가방을 등에 메고 병아리처럼 앙증맞게 종종종 걸어서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차량용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왔다. 천천히 출발하는 차창 너머로 횡단보도를 떠나지 않고 서 있던 젊은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삼십 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모나리자 같은 은은한 미소가 어려 있었고 그 눈빛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다. 사랑스럽고 대견하고 안쓰러운 감정이 담긴 정갈하고 맑은 찻잔 같았다.
묘한 그 표정이 한참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디에서 보았던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봤더라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맞다. 반가사유상, 성모 마리아상!
예술가들이 종교적인 구원자의 상을 만들면서 제일 어렵고 고통스러운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얼굴 표정을 어떻게 구현해 낼까’하는 고심이었을 것이다. 비단이나 캔버스 앞에서, 혹은 나무나 대리석 앞에서 그들은 종착역에 도달한 대륙횡단 열차처럼 결론을 마주했을 것이다. 그건 바로 길 떠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었으리라. 고통과 상처의 바다를 헤매는 인간을 바라보는 구원자의 얼굴이 등교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 같지 않을까?
휴일 아침을 맞아 정원에서 여유 있게 아침식사를 했다. 희고 붉은 매화가 나란히 피어서 멋지게 색이 어우러졌다. 그 옆에는 붓으로 흰 물감을 찍어 놓은 듯 목련이 하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저만치 산수유는 노랗게 피었다가 점차 색이 옅어져 가고 있었고 발아래 복수초는 노랗게 활짝 피었다. 여기저기 봄꽃들이 가득 올라오는 중이었다.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곡의 1악장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정원에 온갖 새들이 반가운 손님처럼 찾아와 있었다. 참새, 직박구리, 동박새,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찌르레기, 멧비둘기 그리고 물까치까지. 빵 부스러기를 저만치 던져주자 직박구리 한 마리가 용감하게 내려와 ‘삐이익’하고 울더니 먹이를 물고 휙 달아났다.
사과 조각을 직박구리를 향해 던지면서 아내가 어제저녁 마을 회의에 참석했던 얘기를 전했다. 마을회관에서 나란히 앉게 된 옆집 안주인이 자신의 큰아들이 군대에 갔다고 말하더란다. 작은 꼬마 때부터 봤던 아이가 벌써 군대를 들어갔다니 아내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세월 참 빠르다고 생각하는 중에 그 안주인의 얘기가 이어졌다.
“전방부대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온 남편이 큰 애 빈방에 들어가더니 대성통곡을 했어요.”
그 얘기를 들은 아내는 회의 중이라 크게 웃을 수가 없어서 입을 틀어막았고 웃음을 참느라 한동안 힘들었다고 했다.
반가사유상과 성모 마리아상의 표정에 하나를 더 넣어야 할 것 같다. 입대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속울음 그득한 눈빛 말이다.
아! 세상이 그런 눈빛과 표정 그리고 마음으로 가득하다면 훨씬 덜 고단하고 더욱 평화로울 텐데. 그런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생각이 꽃 피고 새 우는 이 봄에 아지랑이처럼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