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었다. 자녀들을 분가시키고 적적한 마음에 새를 길렀다. 사람의 말을 따라 한다는 앵무새였다. 그녀는 반려조를 어깨 위에 올린 채 샌프란시스코 도심 공원으로 종종 산책을 나갔다. 울창한 나무와 호수,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 앵무새는 기분이 좋아서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세월이 흐르고 보니 이제 알 것 같아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를 구성지게 부르는 앵무새를 보고 신기해하면서 구경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산책 중이던 백인과 흑인, 그리고 히스패닉 등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으며 둥그렇게 무리를 지었다. 그러자 앵무새는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큰소리를 질렀다.
“저리 가라~”
하지만 사람들은 떠날 생각도 없이 앵무새가 외치는 말의 뜻도 모른 채 “오~”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앵무새가 또 외쳤다.
“치아라~”
치아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치워라’라는 말이다.
몰려든 사람들에게 ‘저리 가라’, ‘치아라’고 소리치는 앵무새의 외침 소리에 그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영어로 그 뜻을 설명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남편은 경상도 남자인데 그가 자주 하는 말들을 앵무새가 따라서 배웠던 모양이다.
지금은 반려견이나 반려묘 문화가 번성하고 있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내던 80년대에는 새를 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새 기르기가 유행처럼 흔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파트가 지금처럼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서 대다수 사람들은 단독주택에 거주했고 새똥 냄새, 울음소리 등에도 불구하고 새를 기르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다.
마산은 수출자유지역과 한일합섬 등 기업체가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7대 도시로 성장했다.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이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셋방은 내놓으면 서로 들어오려 난리였다. 당시 초등학교는 학생들로 미어터져서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해야만 했다. 책걸상 없이 교실 바닥에서 수업을 한 적도 있었다. 직장인들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나가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회식은 집에서 하는 것이 관례다시피 했다. 옆집에서 큰 상을, 뒷집에서 수저와 그릇을 빌렸다. 닭을 잡고 잡채와 불고기로 대접했다. 밤늦게 목청껏 유행가를 부르며 젓가락으로 밥상을 두드렸다. 이웃들은 잠을 설쳐도 서로 이해해 주었다. 지금 같으면 소음과 안면방해로 즉시 문제가 될 일이지만 이웃들의 항의는 없었다. 다음번에는 자기 집에서도 저녁 회식이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폭력적이었지만 당연시 여겼다. 사회는 경직되어 있었고 급격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컬러텔레비전을 들이듯 아버지가 어느 날 새장을 하나 사서 들고 왔다. 잉꼬부부 한 쌍이었다. 옆집 용이네는 십자매를 키웠다. 노란색 잉꼬 한 쌍이 부리로 조를 까먹는 앙증맞은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재미있고 신기했다. 어린 남동생의 작고 포동한 손가락, 여동생의 오동통하고 발그스레한 볼 그리고 호기심 어린 맑은 눈동자들이 새장을 자주 기웃거렸다. 가혹한 노동과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 빠져 있던 어른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위로를 느꼈고 희망을 꿈꿨다.
그 시절 우리 집에 앵무새나 구관조를 길렀더라면 어떤 말을 배웠을까. 가만히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다. 앵무새는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을 따라 했을 것이다.
'공부해라' '이것도 못해' '문디 자슥' '커서 머 할래'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서글프게도 칭찬보다는 나무람이다. 내가 사춘기를 막 지나자 허망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한동안 그 빈자리는 원망과 회한으로 뒤덮였다. 화해하고 이해할 기회를 상실했던 우리의 관계는 나만의 숙제로만 남았다. 어느덧 아버지의 나이를 넘기고서야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남을까.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처럼 알량하고 처량한 자존심만으로 기억될 것인지,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보험금만 남길 것인지. 아니면 '저리 가라, 치아라'로 남을 것인지.
아등바등 살아가면서 부대끼다가 홀연히 떠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상대를 위한다면서 오히려 비하하고 상처 주는 말 대신, 격려하고 응원하는 한 마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보듬어 주는 한 마디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넌 언제나 소중한 나의 아들' '항상 응원할게 나의 딸' '네가 자랑스럽다'
아내에게 기억되기를 희망하는 나의 한마디 말은 교훈적인 말도 멋진 말도 그럴듯한 말도 아니다. 식상하면서 낡았고 유행가 가사 같지만 꼭 듣고 싶은 그 말 한마디.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모든 승객들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핸드폰으로 남겼다는 마지막 그 말 한마디. 날 기억할 때면 가만히 전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 말 한마디.
가정의 달 5월 화창한 주말,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앵무새 이야기를 듣고 내가 남길 마지막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오래 기억하도록 자주 말해야겠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