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에 늘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교육단지 오거리에 형광색 조끼를 입은 노인들이다. 노란 깃발과 경광봉을 들고 교통을 통제한다. 그들이 없다면 교차로는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혼잡해질 것이다.
대략 70대로 보이는 남녀 노인들. 주름진 얼굴과 굽은 등 그리고 더딘 행동이 그들의 나이를 가늠하게 한다. 1950년 전후로 태어났던 그들은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중세와 근대 그리고 현대가 혼종된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70년대 장발과 청바지 그리고 미니스커트에 나훈아와 이미자 노래를 듣고 디스코에 막춤을 추며 빛나는 청춘의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싸우고 사랑하며 고민하고 애태우면서 젊은 날의 고독과 방황을 치렀다. 지금 세대보다 훨씬 일찍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계엄령과 쿠데타, 고도성장과 민주화의 격변기를 알게 모르게 온몸으로 경험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미니스커트 대신 펑퍼짐한 바지를, 청바지 대신 등산바지를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불안정하게 도로 위에 서 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는 언제나 보이던 그 노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서 있었다. 아마도 그날은 학부모들이 그 역할을 대신 맡은 것 같았다. 키 작고 구부정한 할머니가 서 있던 자리에는 팽팽한 피부를 지닌 30대 초반의 여성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축 늘어진 눈꺼풀과 검고 짙은 주름의 할머니 자리에는 새카만 눈을 초롱거리면서 하얗게 반짝이는 피부를 지닌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마치 노인들이 그들의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이하면서도 슬픈 착각이 들었다. 아! 그들도 저렇게 아름다웠구나. 저렇게 탄력 있고 윤기 흐르는 육체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바쁘게 생의 바닷속을 고등어처럼 힘차게 헤엄쳤겠구나.
그들의 처진 눈꺼풀, 검고 깊은 주름은 불현듯 사라지고 밝고 윤기가 도는 팽팽한 피부로 바뀌었다. 등은 꼿꼿해지고 행동은 재빨라졌다. 다시 젊어진 것이다. 나이 칠십이 넘었지만 다시 회복한 청춘을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환희에 차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까. 삶이 다시 시작된다는 생각으로 가슴 설레어할까. 하지만 그들은 차분했다. 젊고 탄력 있는 육체로 바뀌었지만 묵묵히 경광봉과 깃발을 들고 늘 해오던 일을 하는 사람들처럼 표정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삼십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점심을 같이 먹고 있던 후배가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돌아가지 않겠어."
"왜죠?"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삶이 행복으로 충만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후회스럽고 바로잡고 싶은 일들이 많지만, 문제를 해결하자고 들면 또 다른 문제가 만들어질 것이다. 수많은 우연들이 얽히고설켜서 예상하지 못하는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 모드가 '리셋'된다면 해야만 하는 일들과 겪어야 할 시간들이 나를 무겁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 동부에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라는 동물이 있다. 수명이 길고 암도 거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개미나 꿀벌 그리고 인간처럼 진사회성을 가지는데 여왕만이 자손을 낳으며 나머지 암컷들은 번식하지 않고 여왕과 새끼들을 보살핀다고 한다. 일반적인 설치류에 비해 10배나 오래 살고 특히나 죽을 때까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면 800년을 살면서 늙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히알루론산이라는 생체물질이 노화와 암을 억제하기 때문이란다. 당연히 많은 과학자들이 이 동물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어서 한 해에 백 편이 넘는 논문들이 쏟아진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늙지 않고 싱싱한 육체를 유지한 채 암도 안 걸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평생을 살면서 세 명중 한 명은 암에 걸리고 두 명 중에 한 명은 치매에 걸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30년 전의 세상보다는 그 당시의 육신이 부러워. 그때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 그 당시의 몸으로 바뀌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덧붙여 대답한 나의 말에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삼십 년 전 내 나이와 비슷하다. 나는 주름 하나 없이 반짝이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는 과연 나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젊을 때는 자신이 늙어갈 것이란 걸 머리로는 이해한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자신의 젊음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거꾸로 30년 전의 나를 지금의 나도 제대로 모른다. 두뇌 속에 저장된 기억으로 그때의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휘발되고 윤색된 기억이라는 불완전한 자국에 의지해서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다. 아침 출근길, 소계광장에서 활짝 핀 동백꽃을 보았다. 목련꽃은 희고 큰 꽃잎을 자랑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백색 꽃잎이 금방 시들고 또 시커멓게 얼룩이 지면서 추하게 늙는다. 하지만 동백꽃은 꽃잎이 시들지 않고 끝까지 피어 있다가 어느 날 ’툭‘하고 꽃봉오리 전체가 떨어져 내린다. 젊음을 유지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아프리카의 벌거숭이두더지쥐처럼.
아직 사람은 아프리카의 벌거숭이두더지쥐처럼 늙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늙어도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추하게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 망념에 사로잡혀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아등거리거나 마치 저승에 싸들고 갈 것처럼 돈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젊음이 부럽겠지만 늙어감을 너무 애써 감추지 않기를 바란다. 급격히 변하는 세상,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낡은 정치관이나 신념을 주입하거나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낙엽처럼 조용히 세상의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감히 바라건대 육체는 늙더라도 생각이 늙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마치 하얀 눈밭에 핀 붉은 동백꽃처럼.
얼마 전 넘어져서 팔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왼팔에 부목을 한 아내가 난로 앞에서 꾸벅거리며 졸고 있다. 젊은 시절 입고 다니던 미니스커트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소녀 같은 그녀를 향해 중얼거렸다.
"동백꽃처럼 살다 갔으면 좋겠어. 나도 당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