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냥 ‘피리’라고 불렀지만 정확하게는 서양식 관악기인 ‘리코더’였다. 그 리코더를 연주하는 시험날이 다가왔다.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이었을 때였는데 학생들은 번호순대로 교탁 앞으로 나와서 지정된 곡을 연주해야 했다. 바로 앞의 아이가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연주를 잘하는 바람에 더욱 부담감이 엄습했다. 내 이름이 선생님의 입을 통해 호명되자 오금이 저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리 반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쏠렸고 이를 의식하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연주가 시작되고 나는 곧 음을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다. 순간 당황해서 머뭇거렸다. 실수가 실수를 불렀고 음정은 마치 바이브레이션을 넣은 듯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연습했던 음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제멋대로 새로운 곡이 탄생하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계속 연주를 이어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터졌다. 그 잠깐의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선생님은 됐으니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구멍을 찾아 들어가는 쥐처럼 재빨리 내 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그 장면은 트라우마로 남아서 자주 나를 괴롭혔고 남들 앞에 나서거나 발언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관악기는 무엇일까요? 출근길 클래식 라디오 방송에서 들려온 아나운서의 질문이었다. 답은 의외였다. 호른이라고 했다. 달팽이처럼 생긴 악기.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모습. 음색이 웅장하면서도 따듯한 악기가 호른이다. 건반이 88개나 되는 피아노에 비해 단순해 보이는 호른이 왜 연주하기가 그렇게 힘이 들까?
호른의 둘둘 말린 몸체를 일직선으로 펴면 그 길이가 관악기 중에서 제일 길다고 한다. 하지만 마우스피스는 그중 제일 작은 데다 호흡의 강도와 입술의 떨림 등을 이용해 연주를 해야 하므로 훨씬 섬세함이 요구된다고 한다. 마치 덩치 큰 코끼리를 젓가락을 이용해서 다뤄야 하는 일처럼. 그래서 일반인들은 소리조차 내기 어렵다고 한다. 호른 연주자는 이 악기를 연주할 때 작은 마우스피스를 통해 호흡과 입술 근육을 미세하게 조종하며 커다란 금속관이 멋진 소리를 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작은 실수에도 소위 ‘삑사리’ 즉 음 이탈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심지어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호른의 실수가 여러 차례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호른 연주자가 실수를 할 때면 다른 단원들도 눈치를 주지는 않는단다.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호른이라는 악기는 어떤 사람이 연주하는 것일까?
현존하는 최고의 호른 연주자는 베를린필의 수석 호른 주자인 슈테판 도어(Stefan Dohr)라고 한다. 연주 비결을 묻는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호른 연주자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빨리 잊는 짧은 기억력이 필수입니다.”
현악기에 비해 관악기의 실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더욱 두드러져 들린다. 연주자의 중압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악기 자체가 불안정한 데다 호흡의 강약 조절, 섬세한 입술 근육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 호른 연주에서 긴장은 최대의 적이다. 그래서 실수에 마음을 두고 스스로 위축된다면 연주를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게 된다. 지나간 것을 빨리 잊고 현재의 연주에 집중하는 침착함이 최고의 연주자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슈테판 도어의 말이 마치 삶의 격언처럼 깊이 와닿았다.
국민학교 6학년 리코더 연주 시험의 트라우마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특히 남 앞에 나서야 할 때면 무대공포증을 더욱 심화시켜서 주눅 들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짓눌리지는 않는다. 극복하려고 노력하거나 훈련을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좋은 점은 멋지게 나를 꾸미거나 그렇게 보이려는 집착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알량한 자존심이 강할수록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힘은 저절로 빠졌다. 반면에 못난 내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는 힘은 늘었다. 노심초사 신경을 쓰던 ‘사람들의 시선’도, 애면글면 내세우려 하거나 감추려 들던 ‘나’도 사실 별 게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해가 며칠 남지 않았다. 연말을 맞으면 항상 느끼는 것인데, 일 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면 뻐근한 근육과 턱밑까지 차오르는 호흡의 고통 때문에 저 모퉁이까지 오르고 저 언덕까지 이르는 것이 지루하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산 정상에 서고 보면 내가 언제 여기까지 올랐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세월도 그처럼 느껴지게 되는지도 모른다.
올해를 돌아보니 어김없이 내가 저지른 실수들과 실패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과 묵은 감정들은 또 얼마나 많던가. 그것 때문에 자책하며 자신을 괴롭히지 말자. 잘 헤쳐 나왔다고, 이만큼 해내지 않았냐고 격려해 주자. 우리에게는 곧 과거가 될 지금 이 순간이 있고 다가올 내일이 있으니. 아직 연주는 끝나지 않았고 나도 당신도 저마다의 인생을 아름답게 연주해야 하니까.
다시 맞이하는 출근길, 주남저수지 옆 작은 연못에서는 밤을 지새운, 관악기처럼 매끈한 긴 목을 가진 새하얀 큰고니 수십여 마리가 힘차게 날아오른다. 대열을 지어 날아오르더니 달리는 나의 차창 너머로 나란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먹이를 찾아 삶을 찾아 “곤... 고곤” 노래하며 힘차게 날아가고 있다. 그저 아름답다고 할 밖에는.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