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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정원 Jan 20. 2024

동생의 쿠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물을 마시다가 플라스틱 용기에 가득 담긴 쿠키를 보았다.

 

“웬 쿠키야?” 내가 물었다.


“도련님과 동서가 오후에 왔었는데 먹어 보라며 주고 갔어.” 설거지를 하던 아내가 대답했다.


제법 큰 용기에 가득 담긴 쿠키는 모양이 투박했고 별다른 토핑이나 장식이 없었다. 집에서 직접 만든 거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근데 왜 이리 못생겼지? 제수씨 솜씨가 이 정도는 아닌데.”라고 내가 말하자,


“아니, 동서가 아니라 도련님이 혼자 만든 거래.”라며 아내가 빙긋이 웃었다.


“동생이?”


70년대 말 내가 열 살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급속히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던 마산의 어느 연립주택으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빴다. 아버지는 평일에 직장 다니랴, 일요일에는 돌과 나무를 구해서 화단을 꾸미랴 정신이 없었고, 어머니는 청소하고 살림하며 이웃 주민들을 익히느라 부산하셨다. 우리 형제들은 놀기 바빴다.


우리가 방학을 맞았을 때 어머니는 큼지막한 살구색 전기오븐을 사더니 며칠 뒤 밀가루를 반죽하고 계셨다. 어린 형제들은 옆에서 지켜보다가 우리도 만들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어머니는 적당량의 반죽을 골고루 나눠 주셨다. 우리들은 신이 나서 고사리 손으로 조몰락거렸다. 밀가루 반죽의 부드럽고 말랑한 촉감을 느끼며 우리는 토끼, 거북이, 개, 고양이 등을 빚었다. 뺨에, 머리에, 옷 여기저기에 하얀 밀가루를 묻히고서 누가 만든 게 더 예쁘냐 누가 더 닮았냐며 옥신각신거렸다. 그러면 엄마가 심판으로 소환되는 것이었다.


“이게 이쁘구나. 해피를 썩 닮았네.” 엄마가 여동생이 만든 우리 집 강아지 해피 모양 반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야. 내 고양이가 더 낫다고오~옷. 자세히 좀 봐줘~” 나와 막내 동생은 칭얼거리며 떼를 쓰곤 했다. 동생은 눈물까지 흘렸다. 그러면 엄마는 웃으시며 “그래 니게 더 낫다”며 동생을 다독이셨다.


즐겁게 만든 반죽들이 모두 오븐에 들어간 후 우리들은 입안 가득 고인 침을 삼키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오븐 주위를 맴돌았다. 잠시 뒤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넘쳤고 뚜껑을 열자 반죽들은 갈색으로 부풀어져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변신해 있었다.


저녁에 퇴근하신 아버지에게도 쿠키가 건네졌다. 아버지가 하나씩 집어들 때마다 저건 내가 만든 거야, 아니야 내 거야 하며 우리 형제들은 서로 우겼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이거 누가 만들었노? 진짜 못생깄네.”


서로 자기 거라고 시끄럽게 우기던 형제들은 입이 합죽이가 되어 조용해졌다. 어른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왁자하게 웃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쿠키향 가득했던 그때가 제일 즐거운 추억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당시 그 좁은 집에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살림살이도 썩 좋지 않았음에도 큰맘 먹고 전기오븐을 산 뒤 몇 년 후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당신이 오래 못 사실 것을 예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먹성 좋은 우리 형제들을 위해서 간식거리를 손수 만들어 주기를 즐겨하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함께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선된 재료, 정밀한 계량, 정확한 시간과 온도 그리고 완벽하게 마무리되어 입안 가득  맛과 향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파티셰가 만든 쿠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머니의 쿠키는 그저 소박하지만 정갈했다. 엉성한 모양에 부실한 재료, 눈대중 손대중으로 빚은 질박한 맛. 하지만 세월이 지나 아무리 맛있는 과자를 먹어도 한 가지는 채워지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으로 빚었을 때만 나오는 그 맛 말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어떻게 쿠키 구울 생각을 다 했어?”


“엄마가 생각나면 함께 쿠키를 굽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만들곤 해. 암만해도 예전 엄마의 그 맛이 아니야. 이번에도 잘 안 됐지만 그래도 한 번 드셔봐.” 어느새 오십을 넘은 동생이 겸연쩍게 대답했다.


동생이 열 살을 조금 넘겼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사십 년이 훌쩍 지났다. 막내를 무척 사랑하셨던 어머니는 쉬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막내가 간직하는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은 쿠키 만들기였을 것이다. 그것이 어찌 잊히겠는가.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리울 때면 행복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밀가루를 반죽하고 쿠키를 구웠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먹을 사람도 없어서 만든 것들은 주변에 나눠주곤 한다 했다. 앞으로 또 얼마나 쿠키를 굽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동생의 쿠키 만들기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다 마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언젠가 검버섯 가득한 앙상한 손가락으로 밀가루를 반죽하고 오븐에서 노릇하게 다 익기를 기다리며 늙은 동생은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또 그렇게 그리워하겠지.


동생이 만든 투박한 모양의 쿠키 하나를 집어서 먹어 보았다. 입안에 가득 시나몬향이 번졌다. 달지 않았지만 고소했다. 어느 한쪽은 지나치고 다른 하나는 빠진 맛이었다. 마치 어딘가 비어있기에 더욱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오는 ‘노라 존스’나 37년 만에 다시 부른 ‘정미조’의 노랫소리처럼.


동생의 쿠키 맛에서는 나의 추억이 들어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었고 또 어느 자리에는 오래전 엄마의 흔적이 아스라이 스며있었다. 그 어떤 파티셰의 과자에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 동생의 못난 쿠키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과 눈물 한 방울. 우물거리던 나는 쉽게 삼킬 수가 없었다. 목이 메고 코끝이 시큰해 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셨지만 그 따스했던 사랑은 핏줄로, 숨결로, 기억으로 수 십 년의 세월을 날아와 동생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진하고 따뜻했던 그 온기가 동생의 쿠키에서 나는 시나몬향처럼 오늘 내 온몸에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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