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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마애불과 담장 사이 그 어디쯤

by 힉엣눙크

지난 주말 쌍계사에 다녀왔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에 가보고는 20여 년 만이다. 그동안 왜 안 가봤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쌍계사에서 찍은 사진은 지금도 거실 중앙 조그만 액자에 끼워져 있다.


간혹 사진을 보면서 너무 평범한 배경에 우리는 왜 거기서 사진을 찍었을까 의문을 가졌다. 배경은 그냥 담장 너머 수국 잎뿐이고 상반신의 두 사람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서 미소 짓고 서 있을 뿐이다. 토요일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쌍계사 들어가기 전 십리 벚꽃길에서부터 낯설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그저 하천과 계곡뿐이었는데 지금은 카페, 찻집, 펜션이 즐비했다. 쌍계사 주차장에서 오르던 비포장 길은 넓게 포장이 되어 있었고 우리가 그때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했던 주막은 자취도 없었다.

천왕문 금강문을 지나 대웅전까지 올랐다. 여기가 송광사인 듯 부석사인 듯 헷갈렸다. 20년은 온전한 기억을 남기기엔 긴 시간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대웅전 바로 동쪽 마애불과 그 뒤 낮은 담장을 보는 순간 직감했다. 바로 여기가 거실 탁상용 액자 사진의 배경임을. 석탑도, 대웅전도 일주문도 아닌 그저 평범한 절집 기와 담장 앞이었다. 왜 거기였을까?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 남겨진 숙제로 헛헛한 마음에 차를 세우고 선 뚝방길에서 섬진강은 여전히 유장하게 흘렀고 모래톱 근처 얕은 강물에서 사람들은 재첩을 캐고 있었다. 하동에서 제일 활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변하지 않은 건 강물이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던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왜 우리가 쌍계사 거기서 사진을 찍었는지를. 숙명처럼 모래를 가슴에 안고 사는 재첩처럼 우리는 쌍계사 마애불을 돌아 들어가서 해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해감은 다 되었냐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기약이 없다. 시원한 국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솥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래를 삼키고 또 뱉어낼 것이다.


궁금해할 사람은 없겠지만 누군가 우리의 연애가 어떠했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이제 대답할 수 있다. 섬진강 재첩이 가슴속 응어리진 모래를 흐르는 강물에 풀어놓기 위해 휘도는 물살을 비껴 들어가듯 ‘쌍계사 마애불과 담장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2018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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