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를 먹으며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12시가 다 되었다. 버스에 내려 시장을 지나 올라가면 우리 집이었다. 그 시간이면 시끌벅적하던 시장에 적막이 흐른다. 그 적막을 뚫고 서성이는 한 사람이 있다. 그건 우리 할머니. 여든이 다 된 할머니지만 밤늦도록 공부하고 오는 손녀딸을 기다리는 데는 나이를 넘어섰다. 나는 할머니를 보면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들었다.
"할머니, 왜 또 나와 있어?"
"네가 안 오니 잠이 안 와서 그러지."
할머니는 나의 오랜 룸메이트다.
집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저녁에 시장에서 사 온 간식거리를 꺼냈다. 가끔은 분식, 떡, 빵이었고 과일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검은 봉지에 담겨 있는 포도를 잊을 수가 없다. 여름이 지나 가을의 문턱에서 먹었던 포도의 맛은 지금도 기억이 날 정도다. 마치 할머니의 여름도 지나고 포도의 알하나에 맺혀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내가 늦게 와도 집 앞에서 서성이며 노심초사 나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안 계신다. 하지만 포도를 먹을 때마다 그때의 할머니와 만난다.
너무도 보고 싶고 그리운 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