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백삼홈 Oct 19. 2021

생애 첫 사주 제목은 "그럭저럭 내 인생"

드디어 무직의 꿈을 이루려나보다.

사주 :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간지(干支). 또는 이에 근거하여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점.*


표현 그대로 생애 첫 사주를 봤다.

아이들이 데이트하라고 준 시간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인지 '타로 한번 봐볼까?' 하는 남편의 말에 재미로 시작한 것이 사주가 되었다. 나름 브런치 작가인데 다른 세계도 알아야 한다며 의미를 덧 붙이고, 호기심 끝에 결심을 했다. 그동안 주변에서 다양한 사주 선생님을 소개받았지만 종교가 있고, 사주 볼일이 없어해보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지인들은 종교, 학업, 나이를 불문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사주를 주기적으로 보고 있었다. 사주 본 사람들의 이야기 듣는 일은 흥미로웠다. 전달하는 이야기는 웬만한 일일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다. 대부분 잘된다는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그들의 사주가 잘 맞아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랬다. 무엇이든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편이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타로 집을 검색했다. 근처에 있어 망설임 없이 향했다. 둘 다 첫 경험이라 사실 좀 설렜고, 두려움도 있었다. 건물 삼층에 위치한 타로 집은 꽤나 유명한 집이었다. 방송도 많이 나왔고 다녀간 유명인들도 많아 보였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연세 지긋한 아주머니가 앉아서 우리를 보고 반겼다.

메뉴판 같은 코팅된 종이를 주며 골라보라고 했다. 타로는 지금 현 상황을 알게 되는 거고, 사주는 미래를 알 수 있다고 덧 붙였다. 메뉴는 다양했다. 타로는 만원, 사주는 각 영역별로 한 가지 보는데 만 오천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우리는 한 가지씩만 묻고 가자며 작은 소리로 사주를 선택했다


본격적인 사주 이야기를 하기 앞서 사주 봐주시는 분을 선생님이라 칭하는 게 좋겠다. 선생님은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물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몇 시에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선생님은 시가 정확해야 사주가 정확히 나온다고 했다. 금전 같은 건 시를 알아야 하니까 시를 알고 있는 남편만 보는 걸 권했고 남편은 사업에 관한 사주를 봤다. 한 번쯤 사주를 봤다면 알 수 있는 '어머나' 감탄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무릎팍 도사쯤은 울고 갈 듯한  정확성에 감탄했다. 남편의 생년월일, 출생 시외에 다른 정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사업과 과거를 훤히 꿰뚫고 있었고, 앞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각년도 별로 척척 나열해 주었다. 처음 만나는 사주는 정말 신기하고 놀라웠다. '아! 오묘한 이 세계는 뭐지?' 생각하는 사이 사주풀이가 끝났다.

별 궁금한 게 없었지만 남편이 내 것도 하나 보라는 말에 취업에 대해 물었다. 평생 무직이 꿈이기에 무슨 이야기를 해주나 궁금했다. 선생님은 처음 생년월일을 적더니 종이에 딱 네 글자를 적으셨다. '그럭저럭' 남편과 실소했다.

"그동안은 그럭저럭 괜찮았네. 별 탈 없이 지냈네"

딩동댕! 정답이다. 삶의 희로애락이 누군들 없겠냐마는 직업에 있어서는 그럭저럭 잘 풀렸던 건 맞으니 인정은 해야겠다. 덧붙여 "어렸을 때 공부를 안 해서 선생님을 못했네. 선생님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어린아이들을 가르는 직업이 맞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안 가르쳐 본 것도 아니고, 아이들과 어울리는 일은 나쁘진 않았지만 그 일은 그만 둔지는 오래였다.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가르치는걸 말로 안 하니 글을 쓰나 보네. 아이들을 위한 글을 써"

아니 이건 아니다 싶어 상사에게 결재를 바라는 듯 간절한 소망을 담아 재결재판을 올리는 심정으로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고 싶어요"

"그건 지지부진하고 잘 안될 거야. 그냥 아이들을 위한 거 짧은 글을 써 "

반려 아닌 반려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럭저럭일 것 같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남편 사주의 반도 안 되는 시간과, 남편의 나름 실한 사주풀이와는 달리 시시하리만큼 금방 끝이 났다. 선생님은 70% 정도는 맞을 거라고, 자신 있으니까 적은 종이도 가져가라며 건넨 종이를 기념품처럼 받아서 나왔다.

남편은 삼만 원을 내고 좋은 이야기 들은 걸로 잊자 했지만 그 선생님이 내 첫 사주에 남긴 글씨 '그럭저럭'이라는 말과 글씨가 뇌리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름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을 사주 좀 보다는 사람이 내 인생을 별거 없다고 하니 신경질 난다고 남편에게 심통을 잔뜩 부렸다. 남편은 추리소설 출판해서 선생님 말과 다르게 저는 작가가 되었다며 책 드리자고 했지만, 그 책을 받아 든 선생님은 내 운이 바뀌었다는 둥 그런 말이나 할 거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탓인지 컨디션도 별로 좋지 않은 날은 '그럭저럭'이라는 단어가 한 번씩 떠오른다. 기분 탓지 인지 에세이도 잘 안 써지는 것 같고, 시작도 안 한 소설은 이미 출간도 못한 작품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퇴사 이후의 삶은 무직이고 싶다고 외쳐댔던 내 꿈이 이루어지려나 싶어졌다. 그 선생님은 내 꿈을 진즉에 아시고 그럭저럭 내 인생이라 칭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생애 첫 사주의 큰 그림은 앞으로 추리 소설에 담고 싶은 만큼 소용돌이치는 인생의 미스터리나, 잔잔한 드라마 같은 삶에 갑자기 등장한 누아르 같은 이야기였다. 글감을 찾는 브런치 작가의 기대와 달리 '그럭저럭'했다. 이쯤에서 무직이 내 꿈이야라고 말했던 자신을 탓하며 '정말 인생은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무직에서 벗어나 내 꿈은 추리소설을 쓰고 싶은 소설가라고 떠벌리고 다녀볼 심상이다.


사주를 봤던 사람들에게 사주 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했는데 다시 보기는 무섭고, 그렇지만 올해는 어떤지 또 보고 싶어 진다는 결론을 얻어 냈다. 내가 한번 보고 얻어낸 아주 성급한 결론을 말하자면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든지 자신이 듣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말만 기억한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동안 남의 사주 이야기 대부분 좋은 이야기였고, 몇 주 지나 남편에게  '그럭저럭'에 대한 기분 나쁜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그럭저럭이라는 말을 했었어?'이미 그의 기억 속에 사주 따윈 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미래가 꽤 낙관적인 말을 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정 아빠에게 전화 걸어 몇 시에 태어났냐고- 궁금하니까 과거에 다녀와 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친언니들에게  몇 시에 태어났냐고를 부단히 외쳤지만 돌아오는 말은 "본인도 자신이 몇 시에 태어났는지 몰라"였다. 여기서 미스터리 한 가지는 가지고 가게 되었다. 태어난 시 모름-


서둘러 아이들이 출생카드를 찾아본다. 간호사 선생님이 또렷이 적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첫째는 새벽 5시 12분, 둘째는 새벽 1시 5분. 남편은 기억 못 할 가능성이 많으니 스무 살이 된 조카에게 이메일이라도 남겨서 "내가 죽어 애들이 시를 궁금해하면 이사실을 반드시 알리도록 하라!"는 이상한 유언을 지금이라도 남길까 잠시 생각한다.


출생 시를 몰라서 그럭저럭  인생이었다면 시를 알게 되면 그럭저럭과 다른 멋진 반전이 일어날까 궁금해졌다. 종교가 있으니까 다신 사주 보지 말아야지 했던 생각 했다가 다음에는  용하다는 선생에게 사주풀이를 해야 하나? 아니 출생  사서라도 해볼까? 이상한 생각도 해본다. 다시 사주를 보고 싶은 마음은 미래에 대성할 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보다 '그럭저럭'이라는 단어를 상쇄할만한 단어를 듣고 싶은 생각이  크다. 


사람들은 보통을 좋아한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간다. 중산층. 보통의  같은 단어를 좋아하 어쩌면 선생님의 '그럭저럭'사는  인생은 누구의 사주보다 좋은 사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주로 글을   있는 글감은 되었으니, 만 오천 원짜리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제 '그럭저럭'이란 단어를 훌훌 털어버리자.



*표준어 국어대사전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로는 런웨이(run wa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