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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Oct 12. 2021

산책로는 런웨이(run way)

산책 멋쟁이들이 참 많다.

 요즘 글 쓰는 시간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졌다. 건강과 생각의 정리를 위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생존을 위해 걷는다는 말이 맞겠다. 필라테스, 요가 여러 운동을 해봤는데 걷기만큼 맞는 운동이 없었다. 걷고 나서는 텐션도 좋아지고 밤에 잠도 잘 자게되니 걷는 일에 정성을 쏟는 중이다.


가을장마처럼 긴 비 끝에 반짝 반짝한 햇살로 아침을 맞이했다.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이번 달에 두 번이나 있었던 대체휴일도 끝이 났다. 대체휴일은 직장인만 좋다고 한 말이 새삼 와닿았다. 고단한 이주였다. 드디어 식구들 모두 출근을 하고, 제법 선선해진 아니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덕에 바람막이를 걸쳐 입고 산책에 나선다.


뺨을 스치는 바람도, 높은 하늘도, 노랗게 변신하는 나뭇잎까지 모두 가을 가을 하다.

여름에 걷다 보면 레깅스에 크롭티 입고 운동하는 젊은이들이 마냥 부러웠다. 10년 넘게 복근 주세요! 늘 외치며 복근에 힘주고 운동하고, 나름의 방법대로 노력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두 아이의 출산으로 내 뱃살은 이렇게 되었다는 결론을 핑계삼아  평생 가져가기로 마음먹으니 뱃살도 사랑스럽다. 끝내 크롭티는 입어보지 못한 채 여름은 끝이 났지만, 바야흐로 뱃살 부자들도 당당히 멋쟁이 될 수 있는 바람막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역시나 산책 멋쟁이 하나둘씩 바람막이를 멋스럽게 입고 걷고 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에 잘 보인다고 했다. 알록달록 등산 패션은 세계 곳곳에서 '한국 사람입니다'라는 표시같다고 했다. 산책길에도 예외는 아니다. 등산복만큼이나 화려한 패션이 눈을 사로잡는다. 긴 분홍색 후드티에 검정 레깅스,모자를 쓰고 커피를 들고 걷는 젊은이, 중년 아줌마들이 입는 범접할 수 없는 색상들의 화려한 옷들은 중간중간 시스루무늬로 멋을 낸다. 반소매, 반바지에 레깅스 패션을 멋지게 입어내는 젊은 청년들, 분홍 레깅스에 조커 바지까지 산책길 런웨이가 따로 없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면서 한국의 쇼핑몰과 옷가게를 보면 한 번씩 저렇게 많은 옷은 과연 다 팔릴까? 한국 사람들은 정말 전부 멋쟁이 같아-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화려한 산책길을 물들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위아래로 검정 옷을 입고 나와 걷는 나의 모습이 산책 런웨이와 어울리지 않음을 직감했다. 아줌마가 되면 왜 엉덩이 가리는 긴티를 입고 어두운 계열을 주로 입을까? 뱃살이나 엉덩이 살때문일까? 생각했는데 핵심은 단순히 체중 때문은 아니였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살 한살 먹다보니 다른사람보다 튀어보이는 너무 밝은 색 이나 짧은 옷이 순식간에 어색해지는 중년의 단계 되어버린 것 같다.


산책하며 런웨이 패션들을 살피니 금방 걷기가 끝났다. 걷는 일은 심신을 건강하게 만들고, 글감을 제공해 주며, 혼자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어젯밤에 잠을 잘 자지못해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는데 무기력을 끊어내고 밖으로 나와 걸으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장거리 여행도, 카페도 좋지만, 더 추워지기 전에 많이 걷자. 너무 예쁜 한국의 가을 길 걷는 기쁨을 모두 함께 만끽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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