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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Nov 24. 2021

문방구가 사라진다.

문구 신상의 성지, 아이들의 만물상, 동네 문방구가 하나 둘 사라진다.

"엄마! 모닝글로리 없어진대요."

몇 달 전 문방구 옆에 생긴 무인 편의점에 학용품, 장난감, 간식까지 모여있어 아이들이 문방구 보다 더 자주 드나든다고 한다. 그 여파로 10년 넘게 이용했던 동네 유일한 문방구가 사라진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이들 간식을 사러 나갔다 지나는 길에 폐업이라고 크게 쓰인 문방구에 들어섰다. 아쉬운 마음에 내년 입학하는 소룡이의 알림장을 미리 한 권 사고, 아들의 공책과 펜을 몇 개 샀다. 나가려는데 평소에 자주 오시던 할머니셨는지 계산하시는 분에게 왜 문을 닫냐고 물었다.

"저도 이제  놀려고요. 할머니  너무 오래 봤잖아요. 저도 쉬어야죠" 아주머니는 웃었다.

처음 문방구를 갔을 때는 아저씨였는데, 몇 년 후 사모님인지 주인이 바뀌였는지 꽤 오랜 시간 한 아주머니가 영업을 하셨다.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았지만, 표정은 늘 무표정이어서 가벼운 농담 한번 건넨 적 없었다. 이제 좀 놀아야겠다는 대답이  진심인지, 여러 사람이 물어 대신할 대답을 생각하신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시원함보다는 섭섭함이 더 많이 담긴 듯 느껴졌다.

소문에는 무인 편의점 때문에 장사가 잘 안되어서 문을 닫는다고 했다. 유일한 동네 문방구였는데 이제 학용품을 사려면 꽤 멀리 걸어 다른 단지로 가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해야 하는 문방구 찾아 삼만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마트가 없었던 시절 문방구는 문구 신상품의 성지이자 아이들의 만물상이었다. 온갖 재미난 것들이 가득 넘쳐 학교를 마치면 참새들의 방앗간처럼 드나 들던 곳이었다. 한 푼 두 푼 모아 산 딱지와 인형 옷 입히기, 문방구 입구 작은 오락기에 모여 있던 친구들, 엄마 몰래 불량식품으로 먹었던 아폴로와 꾀돌이, 문방구 밖 한쪽에 매달린 먼지 자욱한 돼지저금통, 몇 날 며칠을 졸라 손에 넣었던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로 기억되는 미미 인형을 받았던 순간도 동네 문방구가 함께였다. 유년시절을 보낸 문방구는 아니지만 꽤 오래 드나들던 곳이 없어진다고 하니 추억의 한 조각을 내놓는 것 같은 쓸쓸한 기분이 든다.


문득, 문방구를 폐업하게 한 무인 편의점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졌다.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소포장된 과자, 학용품, 뽑기, 아이들이 혹할 만한 물건이 가득했다. 무인이라 감시하는 눈도 없으니 구경도 오래 할 수 있고, 아이들 용돈으로 구입할 수 있는 수준의 가격 제품이 많아 아이들이 자주 드나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마침 매장 안에 7살 정도 되는 동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생각되는 오빠가 이것저것 구매해서 무인 계산을 하고 나가는 걸 보았다.

무인 기계를 보면 자꾸만 째려보게 되고, 오래 보게 된다. 심지어 남편과 같이 있으면 서로 신발 끈 묶으며 먼저 기계 대하는 것을 피하려고 시간을 버는 우리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계산하고 나가는 남매의 뒷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오래전 그대로는 아니지만 추억으로 기억되는 곳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무인기계와 CCTV가 많아지는 걸 보면 요즘 익숙한 것들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동네도 최근 무인가게들이 많아졌다. 작은 사거리를 중심으로 무인 밀키트점이 네 곳이나 생기고, 무인 옷 가게, 무인 편의점이 생겼다. 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언젠가부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점점 어색해 진다. 단순히 나이 탓인지, 기분 탓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날에 무척 낯설고 외로운 기분이 든다.


사람은 좋은 기억은 오래 추억으로 남기고, 아픈 과거는 잊히길 바란다. 그 추억의 한 조각이 문방구가 되지 않더라도 아이들 기억 속에 무인기계와 함께 한 날들이 추억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그 힘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차갑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조금 더 따뜻한 추억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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