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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Dec 07. 2021

마흔넘어 되살아난 덕질

그땐 그랬지, 라떼는 말이야라며 그를 떠 올렸다.  나의 43호 가수.

[덕질: 명사,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우리가 좋아하는 싱어게인2가 시작이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늘 드는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정말 정말 많고, 그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부부는 늘 부러웠다. 1회에서는 무명가수들이 나오고, 슈가맨이라며 우리가 알고 있던 예전 가수들이 한 명 씩 등장했다. 무대 위에 올라오는 가수들을 카메라가 한번 쓱 잡아주는 찰나!

"와. 김현성이다" 나도 모르게  늦은 밤, 남편 옆에서 눈치 없이 한 남자 이름을 너무나 반갑고 크게 불렀다.

 "어디? 모르겠는데"

 "저쪽 끝에 서 있잖아. 남색 비슷한 옷 입고"


최근 우리 집에 일명 아이유 사건이 있었다. '아이유를 좋아하나 봐?'라고 물으면, 남편은 늘 아이유가 아닌 그녀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손사래를 쳤었다.알고 보니 그냥 아이유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됐다. 10년동안 속아 억울함에 씩씩댔고, 그날부터 삼사일 정도 "저녁은 아이유랑 먹고 오나?", "아이유에게 해달라고해"라며 유치 왕 선발대회 일등처럼 남편을 대했다. 그 후로 우리 집에선 "아이유"라는 이름이 소리소문 없이 금지어가 되었다.


"그래?난 못 봤는데" 말하는 남편 얼굴을 차마 쳐다보지 못했다. 그가 등장하는 순간 환호와 입꼬리가 올라감이 느껴졌고 아이유가 떠올랐다. 다행히 남편의 유치함의 수준이 나와 조금 달랐다.

 "자기 좋아하는 김현성나오네 보네" 하며 눈은 웃고 있었고 입은 비웃었다. 방송이 끝날때 쯤 "그런데 난 그런 목소리(김현성) 별로 안좋아해"라며 소심한 뒷끝을 보여줬다.


생애  콘서트 가수 김현성이었다. 학창시절 농구선수, 배우, 가수 등의 다양한 덕질을 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 시작된 덕질은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콘서트장의 어두운 무대 뒤에서 아우라를 뽐내며 걸어나오던  순간이 지금껏 잊히지 않았다. 덕질은 팬카페에 가입하는 열성과 앨범을  모으고 카페를 들락거리며  오래 시간 지속됐다. 그가 가수에서 은퇴했을  많이 아쉬웠고, 슈가맨에 나왔을  환호했고, 작가가 되었을  기뻤다.  권의 책을 발간한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멋스럽게 느껴졌다.

며칠 전 부터 그의 노래 생각이 간절해 음악 틀어 놓고, 내일 노래자랑이라도 나갈 것처럼 목놓아 노래를 불렀다. 덕질했던 감정이 뿜뿜 솟아났다.


사실 싱어게인1에 나왔던 기존 가수들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예전 가수들은 반가웠지만, 변해버린 스타일과 목소리라며 적잖은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동갑인 우리부부에게 그때 그시절의 추억을 돋게 했고, 세월 속에 변한 그들을 보며 뭉클하기도 하고, 저들도 늙는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워하며 세월을 느끼는 시간이 된다.


'싱어게인2의 43호 가수 김현성'

아직 그의 모습은 방영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와 노래 평가에 실망스러울까 하는 설렘과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무대에  가수의 모습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우연히 찾은 앨범에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발견한 사진 속 친구를 만나듯 반가웠다. 방송 말미에 그는 "실패한 가수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을 남기며 다음 주를 예고했다. 물론 편집이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글로 덕질하는 팬이있으니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이미 성공한 가수로 기억 될 것이다. 좋은 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노래로, 작가로 무대에서 오래오래 볼 수 있길 바란다. 오랜만에 내안에 잠시 쉬고 있던 덕질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는 걸 보니 순수했던 그때 생각에 미소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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