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여느 집과 다를 것 없는 아침.
출근을 하고, 등원을 하고,동네 언니가 주신 배추와 무로 맛김치도 담그고, 깍두기도 담그고, 열 살 오빠는 온라인 수업에 리코더를 쉴세 없이 불어대며 우리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2시 소룡이가 하원 하는 시간이다.
"휴~ 오늘 유치원에서 전화가 안 왔네. 아무 일도 없었나 보다" 안심을 하려던 차에 전화가 왔다. 늘 입이 방정이다.
"어머님, 소룡이가 오늘 얼굴이 부끄럽다고 울고, 교실에도 안 들어갔어요."
"그래서 제가 소룡이는 부끄러운 게 아니야. 잘 알려주었어요. 어머님도 잘 설명 부탁드릴게요"
세상에..
설마..
사실 아직 소룡이는 얼굴이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아직 어리기도 한 것 같고 그동안 나름의 정신교육을 통해 얼굴이와는 단짝 친구이지 뭔가 불편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게 많은 대화를 나눈 터이다.
얼굴이가 싫고 불편했다면 처음 보청기를 착용하는 날부터 거부감이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선생님. 요즘 소룡이가 부끄럽다는 말을 그냥 평소에도 많이 하는데요. 얼굴이가 부끄럽다고 한 적이 없었는데 다른 것 때문이 아닐까요?" 아닌것 같다는 답변이 왔다.
일단 소룡이가 오면 물어야겠다.
3분이 지나면 오는데 오늘따라 소룡이가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것 같은지 기다림의 시간이 길고 지루했다.
사건의 시작은 이때부터이다.
내리자마자 "엄마 얼굴이가 자꾸 빠져" 얼굴이를 보니 위아래가 바뀌어 대충 걸쳐져 있었다.
"얼굴이 뺏어?". "엄마, 선생님이 사진 찍는다고 뺏어"
아마도 분실 위험 때문에 보청기 사진을 찍으려고 하셨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이렇게 끼고 있었어?"
"포비 차 타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빼고 찍었어"
세상에..
아이들 하원 하는 그 바쁜 시간에 사진을 찍고 넣으려니 익숙하지 않은 보청기 끼기가 쉽지 않았을 터
마음은 급한데 생각보다 쉽게 들어가지 않으니 그냥 넣고 또 넣으셨는지 아이 귀가 빨갛게 되어 엉망으로 꽂혀 있었다.
"소룡아. 선생님이랑 통화했는데 오늘 얼굴이 때문에 부끄러워서 울었어?"
"엄마, 얼굴이 때문에 부끄러운 게 아니었어. 그런데 선생님이 얼굴이가 부끄럽냐고 선생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냥 네.라고 한 거야"
갑지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접촉식 체온계가 반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소룡이를 데리고 체온계를 가지러 내려가는데 가는 길이 무섭고 가기 싫어서 울었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소룡이 옷을 갈아입히고 남편에게 전화를 해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다.
왜 아이는 부끄럽지 않은데 어른들이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부끄럽게 만들고, 그런 편견으로 왜 아이를 바라보는 거냐며 남편에게 서러움을 토로했다. 다시는 같은 일로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는데 유치원 보낸 지 이틀 만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다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께 다시 이야기를 해야지 싶어서 전화를 했다.사실 나는 아이들이 공교육기관에 갈 때 부터 선생님들께 특별한 부탁을 잘하지 않는다. 많은 아이들을 다 살피는 일은 불가능함으로 최소한의 안전한 생활이 유지되면 그냥 만족하는 쪽으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늘 안녕하세요~ 좋은 엄마 코스프레로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던 나는 없었다. 선생님께 정말 다짜고짜 소룡이에게 얼굴이 부끄럽냐고 먼저 이야기하셨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는 말을 못 하셨다. 하지만 그런 의미로 이야기한 건 아니였다고 한다.물론 그랬을 것이다.
몹쓸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부끄럽다고 하고 무섭다고 하고 하니 "아. 보청기 때문인가 싶어, 얼굴이 부끄러워서 그러니?"라고 물으셨을 테고, 애가 울었으니 그냥 네라고 대답한 상황이었겠지 싶었다. 그래도 화가 났다. 아주 부적절한 단어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인사해도 가끔 부끄럽다고 하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소룡이에게 부끄럽냐고 물으면 물음은 당연히 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또 문제는 어제 말했던 '비접촉식으로 체온 측정할게요'의 그 체온계였다. 체온계가 귓속형은 반마다 있는데 비접촉식은 두 개뿐이라 아래서 가져와야 했는데 바빠서 가져오지 못해 아이를 데리고 교무실로 간 것이었다.
소룡이를 체온계도 따로 쓰고, 보청기를 부끄러워하는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지난 달 상담 때 소룡이가 우리 반 엘리트라며 한글과 수는 집에서 시키시냐, 창의력이 남다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던 사실이었다. 또한, 아이에게 엘리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요즘 선생님이 신기했다. 귀가 안 들린다고 전혀 생각 못했다는 선생님의 말이 생각났다. 유치원의 엘리트가 보청기를 하는 순간 특별한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선생님께 보청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소룡이에게도 다른 아이랑 다르게 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이런 부탁을 해야 함이 속상했다.
직장을 다닐 때 10년을 넘게 장애인식개선 사업을 해왔는데 10년 전과 지금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장애인도 아니다.(장애등급을 받을 수 있는 청력이 아니다) 나이가 젊은 선생님이건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건 아이가 조금만 달라도 다르게 대하는 선생님들의 태도, 아니 어른들의 태도는 변한 게 없었다. 그냥 말하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였다. 아니면 내가 10년 넘게 일을 잘 못 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열 살 오빠의 힘을 빌려 보청기 착용하는 컷을 사진으로 찍어 설명서를 만들었다. 유의사항과 함께 말이다.
거기에 특별히 신경 써주시지 말라는 당부도 드렸다. 그리고 비접촉식 체온계를 구매했다.
번거롭게 선생님이 공용체온계를 가져다 쓰지 않도록 정말 이것만은 특별하게 소룡이용이라고 대문짝만한게 붙여서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신경 써 주세요라고 하지만 사실 특별히 신경 쓸 일은 보청기가 빠지거나 물에 빠지는 상황이지 변하는건 없다.혹시 내가 "많이 비싸요"라는 금액을 말하는 순간 이런 상황이 되어버렸나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반성을 했다. 그동안 무심코 내가 생각하고 단정 지어버렸던 수많은 일들로 상대방이 상처 받고 내가 상처 받았던 지난날을 말이다.
남편은 이제 시작인데 그렇게 울면 어떡해 라고 말했지만 시작이 반이고 시작이 중요하다. 그 시작을 현명하게 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난 어른들의 선입견으로 어른인 나를 울게 했던 오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