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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친절해야 한다_적어도 소아과 담당의사라면

소아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들 조금만 친절해 주시면 안 될까요?

by 육백삼홈
포비선생님앞에서 인사를 하네요


살고 있는 동네가 뉴타운이다 보니 초반에는 소아과가 몇 개 없었다.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소아과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어른도 자신에게 맞는 병원이 있듯이 아이들도 맞는 병원이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잘 맞는 병원을 선택했다. 아니다 나랑 잘 맞는 소아과 의사가 있는 소아과를 선택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가 다니는 소아과에는 진료실이 두 개였다. 1 진료실 원장님은 50대로 보이는 차분한 스타일의 여자 선생님, 2 진료실은 그보다 젊은것으로 추정되는 활발한 스타일의 여자 의사 선생님이었다.

늘 1 진료실에 사람이 많았다. 대기 시간도 길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의사 선생님의 진료방법 때문 인 것 같았다. 1 진료실 의사 선생님은 엄마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주신다. 아무리 대기가 길어도 아이들 급하게 진료한다는 느낌이 없었던 것 같다. 말이 많지도 않으셨고 질문에도 다정히 대답해 주셨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오랜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진료를 기다렸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반면, 2 진료실 선생님은 목소리도 우렁차고 빨리빨리 진료를 보셨다. 그런데 말투가 문제였다. 동네 온라인 카페에서 '선생님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 '상처 받았다'는 글이 꽤나 자주 올라왔다.


내가 다니는 진료실은 단연 1 진료실이었다. 몇 년을 다녔는데 1 진료실 선생님께서 그만두신다는 소문이 카페에 났다. 그러자 그 선생님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추측만 할 것인가? 행동에 옮길 것인가?

엄마 수사대들이 나섰나 보다. 혹시 다른데 개업하시나 싶어 셜록홈스 저리 가라의 추리력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지방에 개업하셨다는 글을 보았다. 그 이후에는 그냥 무난한 의사 선생님께 진료를 보며 1 진료실을 고집하며 다녔다.


아이가 난청임을 짐작하고 동네 대학병원에서는 추이를 지켜보자고 하셨던 시기가 지난 것 같았다. 그래도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옮기기로 결심하고 진료의뢰서를 받기 위해 갔던 날이 1 진료실 선생님의 휴진 날이었다. 그래서 2 진료실로 갔다. 가끔 진료를 보곤 해서 이미 오래전부터 얼굴은 아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소룡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이라 혼자서 소아과에 갔다. 선생님께서 대뜸 "엄마, 아이 없이 오면 불법이에요"라고 시작을 해서 여러 가지 상처되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사전에 설명을 드렸었는데 아이가 큰 병원에 옮기기 위해 진료의뢰서를 써달라고 온 엄마의 마음은 하나도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았다.

늘 다니던 소아과였고, 진료 의뢰서를 부모가 대신 가면 불법인지도 몰랐던 나의 무지함이 문제라 생각하고 말자 싶었지만 정말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던 건 사실이다. '불법'이라는 말보다는 "어머님 아이 없이 진료의뢰서는 뗄 수가 없으니 아이랑 다시 와주세요"라고 말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며칠 전 난청 관련 카페에서 글을 읽는데 어떤 엄마가 의사 선생님께 상처 받은 이야기를 남겼다. 덧글을 보면 어디 병원 그 선생님이냐고 모두 아는 눈치였다. 유명하신 의사 선생님들은 하늘의 별따기가 더 쉬울 정도로 진료 잡기도 어렵다. 글의 내용은 어렵게 날짜 잡아 병원에 갔는데 아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검사지만 보고 싸늘하게 등 돌렸던 선생님에게 물어보지도 못해 상처 받고 속상했던 글이었다. 카페에서 이미 상처를 받아봤던 부모들은 그 엄마를 달랬다. 그러면서 조금 더 친절한 다른 대학병원 선생님께 가보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결국 그것도 말 문제였다. "어머님 그래도 한쪽 귀가 정상이라 얼마나 다행이에요"라는 말과 "한쪽은 정상인데 다른 쪽은 기형이에요, 정상귀에 문제 생기면 오고 전공의에게 진료받으세요"

같은 말 다른 느낌은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나 보다.

나도 그랬다. 우리나라에서 최고라는 병원에서 문도 닫지 않고 문진을 보더니 진료도 그러했다. 앞에 환자가 나오기 전에 문도 닫히지 않은 진료실 앞에 대기해서 서 있으라고 했다.

아이에게 한마디, 엄마에게는 왜 이제 왔냐는 듯한 말투, 결과지만 보고 이야기하시던 선생님 내 마음은 절실하고 안타까운 상황이라 그냥 평소 말투였는데 그렇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너무나 차가워서 몸과 마음이 얼어버린 느낌이었다.


최근에 읽은 책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잘 대해주면 좋겠다, 친절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버려합니다. 환상이에요. 그래야 혼자 기대하고 혼자 상처 받은 일은 피할 수 있어요. (박상미, 관계에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중 )


맞다. 관계에서 맞는 말이다. 상처 받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소아과 담당 의사 선생님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직업이다. 누구보다 바쁘고 힘든 직업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는 다른 환자의 보호자와는 마음이 다르다. 아이가 정확히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걱정하고 두려운 부모들에게 냉소적이고 기계적인 말투는 아이의 아픔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사실 부모들이 바라는 건 별게 없다. 불안한 부모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아픈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그것뿐이다.


몇 달 전에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면서 사람들은 생각했다.드라마 속 안정원 선생님 같은 소아과 의사는 정말 현실에 없을까? 그런 드라마의 판타지로 인해 우리는 의사 선생님은 무조건 친절하고 자상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친절한 의사 선생님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특히 소아과 담당 의사 선생들이 먼저 그래 주셨음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조만간 진료가 있다. 그때도 선생님은 변함없으시겠지만 내 마음에 따뜻함을 넣고 또 넣어서 따뜻함의 성을 단단히 쌓아 어떤 빗장에도 뚫리지 말고, 차가움에 녹지 않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말은 살아있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씨를 뿌려 열매를 맺기도 하고, 마음을 더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빗장을 열어젖히기도 한다.

말은 당신과 함께 자라고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이어진다.

말은 내가 가진 그 어떤 것 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

(김윤나_말 그릇,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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