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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Nov 17. 2020

엄마한테 절대 보여 줄 수 없어요.

열 살 아들이  휴대폰을 몰래 보고 있었다.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언어치료를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남편이 힘들었을 테니 저녁은 사 온다고 했지만 오늘따라 내가 한 밥이 먹고 싶어 유난을 떤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김을 굽고, 달래장을 만들고 주말에 만들어 둔 밑반찬을 꺼내 저녁을 차린다.


남편은 퇴근 후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고, 남매는 아빠 따라 들어가 침대에 누워 아빠를 기다린다.

열 살이는 아직 핸드폰이 없다. 남편이 쓰던 휴대폰을 집에서 사용한다. 친구들 대부분이 휴대폰이 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가끔 게임하고 아이들이랑 약속 잡을 깨톡만 하면 된다며 아직도 휴대폰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한 때 야구선수가 꿈이었던 열 살은 주로 야구 관련 뉴스를 보거나 좋아하는 레고, 건담 고르기 정도의 인터넷 검색을 주로 하는 편이다. 제일 좋아하는 게임은 주 1회 한 시간으로 약속을 했다. 그것도 야구게임이다. 친구들보다는 적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하며 하더니 요즘 들어 60분이 꽤 짧게 느껴지나 보다. 정리해야지 말하면 자꾸만 종료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 더뎌진다.


저녁 준비를 거의 마치고 있는데 소룡이가 말한다.

'엄마 오빠가 핸드폰 보고 있는데 안 보여줘' 여러 번 와서 이야기를 한다. 항상 둘이 같이 휴대폰을 보며 낄낄거리는 사이인데 말이다.

마침 방에 들어갈 일이 있어  

'열 살, 뭐 보고 있는데 소룡인 안 보여주는 거야? 엄마한테 말해줘"

갑자기 열 살이 소룡이에게 말도 못 하게 하고 휴대폰도 안보여주고 입을 꾹 닫았다.

"뭐 보고 있었는데?"

"말할 수 없어 말하면 엄마한테 분명히 혼날 거야?"

순간 번개 맞은 듯 머리가 번쩍, 가슴이 쿵, 아찔했다.

"성인물을 보고 있었나?", "잔인한 게임을 하고 있었나", "대체 뭐지?"

알 수 없는 물음표와 느낌표들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순간 감정이 확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며칠 전에 들었던 강의 생각이 났다.

박상미 교수님이 그랬다. "아이들하고 대화를 하지 마세요. 대화를 하지 마시고 소망을 말하세요"

그 날 이후로 요즘 아이들에게 소망을 말한다. 그 후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횟수도 줄었고, 혼낸 적은 거의 없으며 나 스스로 마음 돌보느라 힘을 쓰는 요즘이니 함부로 화를 낼 수 없었다.

"열 살, 뺏아서 보면 서로 기분이 나쁘겠지?'

"보여주기 싫으면 뭐보고 있었는지 말해줘"

열 살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휴대폰을 이불 아래 넣고 고집을 피우며 말한다. 

"도저히 못 보여주겠어요"

진짜 큰일이 난 것 같았다.

아직은 순수하다고 생각되었던 아들이 드디어 '도저히'못 보여주는게 생긴것이다. 아차 싶었다. 엄마들이 잘하는 말들 중 하나가 '우리 아이가 이럴 줄 몰랐어요'.'우리 아이는 이런 아이가 아니에요'인데 지금 이 순간이 그런 말이 나와야 하는 타이밍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좋게 말할 단계는 아니다.

대화의 단계를 1.5에서 격상시켜 3 단계 정도로 했다. 거리두기는 이제 무색하다.

"말해줘 아니면 보여줘, 엄마가 뺏어서 보기 전에"

대화가 소망에서 현실로 넘어가고 있다. 결국 열 살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건네주었다.

열 살이 핸드폰이 내손으로 넘어왔다. 꺼진 화면을 켤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떨려서 도대체가 열 수가 없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열어보니 어머나 귀엽기도 하지 '주차하기 게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웃으면 안 되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열 살 왜 이게 절대 못 보여주는 거야?"

"게임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게임을 했잖아"

어머나, 내가 그동안 너무 애를 잡았나? 게임 시간이 부족해서 몰래 한 게 얼마나 된 것일까? 몇 번째 일까? 또 나 몰래 무엇을 했을까? 그래도 주말에는 닌텐도도 하게 해 주고, 게임도 잠깐씩 보너스 타임을 주기도 했었다.

별로 뛰어나지도 않은 상상력에 온갖 생각까지 더해지기 시작 했다.

다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잊지 말아야 한다. 대화를 하지 말고 소망을 말하자.

"그런데 열 살, 게임 안하는 시간에 게임을 한건 잘 못이지만, 그것보다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는 일을 하는 건 정말 잘못한 거야. 가장 큰 잘 못은 내가 하는 일을 누군가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나쁜일이고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어"

나 스스로 칭찬하고 싶어 졌다. 화를 내지도 않고 나 답지 않게 침착했으며 무척이나 소망스러운 대화였다고 말이다.


또래 친구들보다 아직은 순진한 열 살. 아빠 엄마에게 안아 주고 뽀뽀해 달라며 매일 아이처럼 굴 던 열 살이가 이제 사춘기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웃고 있지만 몇 년 후 아니 내일 내가 울고 있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과 걱정이 함께 밀려왔다.

"성인물을 보고 있었나 걱정했어 난" 남편은 "잔인한 게임을 하고 있는 줄 알았어. 성인물은 너무 많이 간 거 같은데"하며 웃는다. 그런데 나는 내일부터는 성교육 강의를 듣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가봐야 하나 생각을 했다.

시작은 게임인데 결론은 성교육 책을 사야겠다는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춘기를 성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이미 꼰대인가 보다.


이렇게 3분간의 스펙터클한 드라마는 끝이 났다. 독자들의 항의가 폭주할 말한 고구마 백개 먹은 결말이 아쉽긴 하겠지만 부모로서 나는 아주 해피엔딩이어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은 날이다.


앞으로 열 살이의 사춘기가 아주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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