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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May 24. 2021

나도 자식일 앞에서는 그냥 무식한 엄마였다.

나에게는 일어나지않을 것만같은 일들은 매 순간 우리에게 찾아온다.

금요일. 두시. 소룡이가 하원 하는 시간이다.

휴대폰의 알람이 울린다. 차량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매일 알람을 해 둔다.

반나절 못 본 아이 만나러 가는 길에 너무 추리하지 않게 옷을 갈아 입고 버스를 기다린다.

유치원 노란색 버스가 들어온다. 문이 열렸는데 소룡이가 내리지 않는다. 선생님이 다급히 전화를 하신다.

무슨 일인가 싶어 평소에 보지도 않았던 차 안을 살펴보았다. 소룡이가 자주 앉는 자리에 아이가 없다. 더 깊숙이 들여다봤는데 소룡이가 없다.

"선생님 소룡이 어디 있어요?"

"아버님이 아침에 5시에 하원 한다고 하셨다는데요"

"제가 지금 데리러 나왔는데 무슨 이야기세요?"

선생님은 연신 휴대폰을 붙잡고 있다. 그리고 별 다른 말도 없이 차는 떠나갔다.


5세부터 유치원을 다니며 정말 긴급했던 하루 빼고, 종일반을 보낸 적이 없었다.

순간, 내가 착각을 했나? 아침마다 빠와 차량 는데 데려다주는데 소룡이 아빠가 오늘 종일반을 보냈나?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따라 전화를  받는다.  번이나 연속해서 전화를 걸었다.

"어~" 전화기 넘어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소룡이 종일반 한다고 했어?"

"무슨 소리야 종일반이라니?"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소룡이가 유치원 버스에서 안 내렸어. 아빠가 5시에 데리러 온다고 했다는데"

유치원에서 전화가 온다. 남편과의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유치원에서는 다른 아이와 헷갈렸다고 소룡이는 종일반에 잘 있고 지금 다시 하원 차 타고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다리의 힘 빠짐과 목소리의 상관관계를 알고 싶어 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온몸이 떨리는 순간 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져갔다. 유치원 전화에 온갖 모진 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이렇게 순간 절망적이고, 세상에서 이런 무식한 사람이 없을 만큼 목소리가 커진 데는 이유가 있었다.


두 달 전쯤에 소룡이가 미술을 하고 싶다고 해서 뒤늦게 유치원 방과 후 미술 수업에 합류했다. 두세 번쯤 간 후였나 어느 날 차에서 내리면서 소룡이가 말한다.

"엄마. 아까 나 여기 왔었다."

"차를 타고 여길 왜와?"

"내가 미술인지 몰라서 집에 가는 차에 타고 오는데 선생님이 차량 선생님에게 전화 왔어. 나 오늘 미술 수업 있다고 해서 내리지 않고 바로 갔어. 다행히 수업은 시작은 안 해서 수업은 잘했어"

"그랬구나. 화, 목은 미술 수업이니까 잊어버리면 안 되겠다." 다시 한번 소룡이에게 인지를 해줬다.

그날, 담임선생님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그래. 미술 수업 한지 별로 안되어 선생님도 헷갈리셨나 보지. 아이들이 20명인데 어떻게 일일이 챙기겠어 이해하자"생각하며 넘겼다. 다음날, 선생님께 다른 일로 전화를 드리면서 미술수업 초반이니까 바쁘시겠지만 한두 번만 잘 챙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게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유치원도 그냥 안일하게 넘긴 이 순간부터 일은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룡이네 유치원에서 2주 전에 그만둔 아이가 있었다. 그 엄마도 조용히 그냥 유치원을 퇴소했기에 소문도 나지 않았다. 그이와 친한 엄마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퇴소 이유는 당연했다.

차량으로 하원 하는 아이인데 그날은 엄마가 데리러 오겠다고 유치원에 연락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차에 태워 하원 시켰다. 물론, 전달의 오류가 생겼을 수 있다.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차량에 아이가 타는 걸 본 선생님도 없었고, 반에도 아이가 없었고, 유치원에 어떤 선생님도 아이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선생님들은 우왕좌왕했고, 그저 서야 차량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차에 타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 상황을 눈으로 보고 들었던 그 엄마는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건 묻지 않아도 다 아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전달 들을 당시 완전 감정이입이 돼서 그만둘만하다고, 심정이 어땠겠냐고만 생각했지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2주 후에 말이다.


종일반 시간에 데리러 온다고 한 아이랑 헷갈린 일이니 아이는 원에 있었을 것이다. 아이가 원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순간 내가 이렇게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의 최악의 상상들이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미술수업시간 실수했을 때 바로 이야기할걸. 하원 문제로 그만둔 아이 이야기 듣고 한번 더 유치원에 전화라도 드려서 이야기할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비가 내렸고, 차로 5분이면 오는 유치원 차량을 기다리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어 주저 않고 말았다. 담임선생님과 부장 선생님과 함께 동승한 차량에서 아이가 내렸다. 소룡이는 저쪽쯤에 가 있으라고 하며 세상 제일 목소리 부자처럼 버럭버럭 무식 무식도 그런 무식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나는 선생님들에게 무식하게 갑질 하는 그런 엄마의 모습으로 선생님들에게 온갖 말들을 쏟아 냈다. 연수를 간 원장 선생님은 연수 중에 전화를 해서 연신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건 그냥 죄송할 문제가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아이가 헷갈리다니, 어제 전학 간 아이도 아니고 이름도 얼굴도 다른 아이를 말이다.

원장님은 여태까지 원에 이틀 없었는데 오늘 그런 일이 생겼다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하셨지만 그 말을 어디 갔지 믿어야 하나 싶었다. 그동안 유치원에 일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곳도 알아보고, 옮기려고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선택이 여지가 없는 유치원이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공립유치원은 자리가 없었고, 그나마 차를 타는 시간이 짧은 유치원이었고, 아이는 너무 좋아하고 잘 적응하고 있는데 나의 욕심으로 쉽게 옮길 수가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오늘 유치원을 가는 소룡이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오늘 두 시에 집에 오는 거야. 그러니까 차 꼭 잘 타고 와"라고 말이다.


아이가 등원을 한 뒤 글을 쓰려고 앉아 생각해 보니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무식한 엄마 같은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선생님들에게 너무 했나? 내 목소리가 너무 컸었나? 아이가 당장 없어진 것도 아닌데 내가 과했나?

세상에 갑질하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아. 무식하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무식해도 너무 무식해서 창피했다.나도 자식일 앞에서는 어떤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그냥 세상 최고 무식한 엄마가 되는 게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부끄럽고 민망했다.

늘 하는 생각이지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잘 다스리는 이성적인 사람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자식일에서는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조금 덜 무식하게 목소리는 좀 낮추어서 이야기해보는건 어떨까? 나에게 이야기 해본다.


무식-하다(無識)「형용사」

「1」 배우지 않은 데다 보고 듣지 못하여 아는 것이 없다.

「2」 행동 따위가 격에 맞거나 세련되지 않고 우악스럽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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