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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Aug 04. 2021

까르띠에가 아니라 신라시대 유물이 내게로 왔다

십 년 만에받은 선물은 국립경주박물관에나 있을 법한장신구였다.

10년 전 남편에게 팔찌를 선물로 받았다. 그게 마지막 팔찌가 되어 갈 때쯤 느닷없이 출근길에

"결혼 10년이 넘었는데 팔찌 하나를 못해줬네. 가지고 싶은 팔찌 있으면 골라봐"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있어. 가지고 싶은 팔찌. 나야 물욕 김여사니까 어떤 품목이든 사고 싶은 게 있지"

"있어? 뭔데?"

"내가 예전부터 가지고 싶다고 했잖아. 보여줄게"

"예쁘네. 얼마야?"

"어.. 이거? 이건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좀 비싸. 한 천만 원 좀 넘지. 다이아몬드 없는 건 더 저렴하고"

핸드폰으로 팔찌를 확인하고서는 아무말없이 출근한다며 평소보다 급히 만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발재간으로 신발을 신고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순식간에 맞이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얼리 팔찌 하나 정도 생각했을 텐데 천만 원 넘는 팔찌를 보여줬으니 깜짝 놀랐나 싶어 문자를 보냈다. 사실 저 팔찌를 사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어쩌면 남편의 반응이 궁금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팔찌 가격보고 많이 놀랐어? 저건 그럼 결혼 20주년에 사줘. 팔찌 사준다고 해서 고마워. 지금 팔찌도 괜찮아" 고마움을 전하며 하는 거절이었지만, 사실 원래 진짜 갖고 싶은 물건이 아닌 대체품을 구입하면 후회하기에 훗날 언젠가 받을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을 무한대로 가진 거절이었다. 

"저 팔찌는 20주년에 사줄게. 저거 말고 금으로 골라봐"

"금? 몇 돈?"

"그건 알아서 마음에 드는 팔찌로 골라봐"

금 시세를 살펴보기 위해 인터넷을 켰다. 한국 금 거래소에서 순금 시세가 290,000원이니까 세 돈만 해도 백만 원이 되어가는 금액이다. 남편의 스케일을 알기에 대략 백만원선이겠다 싶은 생각에 인터넷으로 대충 가격을 알아본다. 비슷한 모양의 팔찌가 대부분이었다. 이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순금으로 할 수 있는 디자인의 종류는 비교적 한정적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금하면 왠지 종로라는 곳에 가봐야 할 것만 같아 남편과 주말에 들렀다. 종로 귀금속 상가에는 주얼리 브랜드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20대 남자 친구가 아르바이트해서 사준 팔찌를 사러 간게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간 종로의 귀금속 상가는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건물도 새로웠고 그 안에 다양한 귀금속 상점들이 즐비했다. 한 시간쯤 돌아다니다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팔찌를 발견했다. 여기서 난간에 봉착했다. 세 돈으로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없었다. 최소 다섯 돈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다섯 돈이면 가격이 급상승하니 남편의 계획에 어긋날 것이다. 때 맞춰 남편은 다섯 돈 정도는 해 줄 수 있다고 귀뜸을 해줬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평소의 이성적이며 알뜰한 김여사는 어디 가고 철없는 마누라처럼 다섯 돈짜리 팔찌를 넙죽 구입했다. 

며칠 후 맞춘 팔찌를 찾으러 가는 길에 순금팔찌를 찾으러 간다고 생각하니 촌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됐다. 누가 따라오면 어쩌나,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어디다 넣고 오지?, 계좌입금도 안되고 현금으로 가지고 오랬는데 가져가는 현금을 어찌해야하나, 남편은 괜히 두리번 거리지 말라며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고 웃었다. 

팔찌를 찾아 하고 나서 언니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예쁜데, 정말 노랗다"

"좀 신라시대 유물 같나?"

"아니야. 예뻐. 좋겠네"라고 말해줬지만 하루 보고, 이틀 보고, 삼일 보니 너무 노랗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정말 국립경주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란 금색의 유물 팔찌 같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 기회에 살아본 적 없고, 해보지 못했던 신라시대 공주라 생각하며 살지 싶어 예쁘게 잘 착용하고 있다. 그러면서 20주년이 앞으로 9년 남았으니 그때는 반드시 원하는 팔찌를 받고싶다는 과욕을 부려 본다.  

입으로는 항상  미니멀을 추구하지만 내 안에 가득한 물욕을 버리기는 마흔이 넘어서니 더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팔찌만큼은 미니멀하게 그때는 신라시대 유물을 정리하고, 까르띠에 팔찌 하나로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보자. 까르띠에를 향한 내안의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 되었다.

 (결혼 20주년까지 남은 시간 3347일)


국립경주박물관소장용/ 황북66/ 금팔찌,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 및 금반지_신라


종로에서 구입한 다섯 돈짜리 일명 신라시대 유물 팔찌_이 또한 많이 남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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