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백삼홈 Aug 05. 2021

"돌 밥"을 아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보다 더 강력한 돌밥을 아십니까?

"새벽에도 밥이 들어 가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아주 힘차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스물세살쯤이었나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어쩌면 삶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하듯 하루하루 살아 낸 적이 있었다. 새벽에는 영어학원을 다녔고, 대학원 조교로 일을 하면서 수업시간에는 수업을 듣고, 수업 없는 시간에는 조교를 하고 6시가 되면 학교 도서관에서 늦은시간까지 과제와 공부를 했던 시절, 잠자는 시간이라고는 고작 4시간 정도였다.


그 시절 새벽 5시에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혼자밥을 먹는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라 조용히 최소한의 소리만 내며 밥을 차려 먹었다. 잠에서 깨던 엄마는 "새벽에도 밥이 들어가니?"라는 말을 가끔씩 건네셨다. 생각해보니 어렸을때 부터 밥을 잘 챙겨주셨고 그덕에 잘 챙겨먹는 사람으로 성장 했다. 혼자 밥을 차릴 수 있는 시기가 되면서 부터는 열심히 챙겨 먹고 다녔다. 혼자 독립을 했던 그때도 참 부지런히 밥을 차리고 챙겨먹고 다녔다. 혼자도 잘 먹고, 출장가서도 잘 먹고 생각해보니 정말 밥을 잘 챙겨먹는 사람이거나 탄수화물 중독자였지 싶다. 늘 마른체형이라 적게 먹고 잘 안먹을 것 같다고하지만 먹는걸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성격상 유혹에 강한 편이지만 달달하고 자극적인 음식의 유혹은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고 대부분 무너지는 편에 속한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밥에 대한 집착도 대단하다. 사실 밥에 대한 예찬을 하려고 글을 시작한게 아니였는데 밥에 대한 예찬이 되어 버렸다.


돌밥.돌밥 돌고도는 인생


내가 사랑했던 아니 우리가 사랑하는 "밥"이 이제는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 가장 큰 영향을 준건 코로나19 이놈이다. 모두를 꼼짝마!시켰던 바이러스는 우리를 집으로 가두었다. 회사일도 집에서, 공부도 집에서, 놀기도 집에서 모두 집안에서이루어 졌다.그때부터 전업주부 아니 누군가의 밥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밥차리는게 뭐가 어렵냐고"고 말한다면 적어도 지금 육아중인 엄마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말들과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들을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음식을 해서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왠지 오늘 하루도 잘 보낸 것 처럼 알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이런 내가 싫어질 정도면 원래 밥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끔찍한 나날일 것이다.

요즘 친구들과 안부를 묻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밥이야기이다.


"오늘 뭐 먹지?"

"오늘 점심뭐먹어? 힌트좀 줘"

"저녁준비는 다 했어? 저녁반찬은 뭐야?"

"하루종일 커피만마시고 살 수 있어."

"난 안먹어도 배가 안아고파."

"밥 좀 안먹고 살면 좋겠네."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 어디서 밥에 대한 음모를 공모라도   너도 나도   없다는  밥에 대해 이말 저말을 해댄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셨나요?라고 묻는다면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먹고 나면,내일 아침은 뭐먹지?라며  뭔가 이상하리만큼 매일 같은 패턴으로 돌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들 사이에 '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한다' 줄임말로 '돌밥돌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  점심이 찾아오고,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저녁이 되는 이상하리만큼 반복되는 신비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밥먹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욕아닌 욕을 먹고 있는 밥.이 글을 쓰면서도 오늘 저녁은 뭘 먹나 고민하고 있는 나를 본다.

수시로 문자 메세지로 오는 안전안내의 코로나19 확진자 몇명의 문자처럼 오늘 메뉴는 "아침은 가볍게 우유와 미숫가루, 점심은 시원한 냉면, 저녁은 영양만점 비빔밥"이라며 매일 알려주는 문자가 오면 세상 즐거운  들이  것만 같다.  슬플 정도는 아니였는데  글을 쓰다 보니 지금도 삼시세끼 걱정하는 모든 밥하는 사람들이 가여워 졌다.  이게 이렇게까지 슬플일이야라고 생각하겠지만 오늘은 진정 마음찡하게 슬픈날이다.




[내가 차리지 않은 밥은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예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까르띠에가 아니라 신라시대 유물이 내게로 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