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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Aug 09. 2021

세트로 선택한건 내 인생의 큰 실수 였다.

다음 생에도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조건은 단 하나! 단품이어야만 해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남편이 있다. 결혼 11년 차. 기혼여성이 사별이나 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오래전에 김용임 씨의 '도로남'이라는 노래를 들어 본 적 있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이런 노래도 있네-가사가 재밌네" 콧방귀 뀌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결혼을 할 땐 평생 내 편으로 살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 특히 시댁과 관련된 일에 남편은 남의 편이 된다. 남편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의 숨은 뜻은 그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을 제기해 보고 싶지만, 사전에 남편(男便): 명사 혼인하여 여자의 짝이 된 남자(표준어 국어대사전)라 명시돼 있다.

결혼 후 살아보니 이 노래가 딱이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몇 번 있기도 했지만 남편과 결혼하길 잘했다. 내 삶은 후회보다는 행복한 순간이 더 많다. 삶을 다 산건 아니니까 아직 까지라는 조건을 살짝 달아본다.


내 남편이니까 내 마음대로 점수를 매겨본다면 10점 만점에 9.8점 정도다. 어쩌면 나쁜 남자를 좋아하는 사람 취향만 아니면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남편상이다. 다정함은 기본이고 말투, 표정, 예의까지 부족함 없이 장착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내 남편은 아래와 같은 행동을 자주 하는 편이다.

꽃을 자주 사주는 남편

빵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늘 맛있는 빵을 조공하는 남편

맛있는 음식은 항상 먼저 주는 남편

설거지와 집안일은 아내가 먼저 할까 늘 먼저 나서서 하는 남편

아내가 가지고 싶은 걸 사주려고 노력하는 남편

아내를 비롯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비꼬지 않는 남편

늘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는 남편

화내거나 소리치지 않고, 욕하지 않는 남편

늘 안아주고 손잡아주는 남편

아직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남편

이보다 더 좋은 남편과 사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쨌든 매우 괜찮은 남편과 살고 있다.



결혼을 했는데 남편과 시어머니가 세트였다.


글을 읽으며 남의 인생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 "내 인생은 왜 이러지? 우리 남편은 전부 반대인데? 이 아줌마는 전생에나라를 구했나?"생각이 들 때쯤 이런 고백을 하고 싶다.

"시어머님도 함께 살고 있어요"

"아...." 하는 소리가 글 쓰는 나에게만 들리는 걸까? 이건 환청일까? 아 진짜 들리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시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님이 결혼 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가셔서 남편과 둘이 살고 있던 시어머님도 신혼 시작부터 같이 했다. 결혼 초 직장을 다닐 때는 서로의 발톱을 드러내지 않고, 자본주의 미소만 짓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름 그때는 사이가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갈등의 서막은 퇴직을 하며 한 집에 두 여자가 살림을 시작하면서 시작되었다. 물론 오늘은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시집살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이 이야긴 조금 미뤄두자.


남편을 아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남편은 정말 자상함의 끝판왕", "11년이 지나도 한결같네", "정말 좋은 남편과 산다" 사람들 칭찬에 다시되묻는다.

"우리 남편 너무 좋지. 그런데 세트 좋아해? 아님 단품 좋아해? "그러면 대부분은 세트를 선택한다.

"난 단품을 좋아해. 사람을 물건과 숫자로 표현해 미안하지만, 100점에 가까운 남편과 살고 있지만, 난 그냥 조금 부족해도 한 48점 정도 남편이 단품이면 좋겠네. 다시 물어볼게? 세트(100남편+시어머님)와 단품(50점 남편)중 어떤 걸 선택할래?"라고 다시 물으면 대부분 아까와 다른 답을 선택한다.

시어머님 문제가 아니면 거의 싸워본 적도 없을 정도로 사이좋은 부부지만, 남편이 여태까지 내편만 되어준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로남이 된 순간도 있었지만, 예민한 나와 늘 함께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크다.


어제 새벽잠이 깨져 곤히 잠든 남편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늙어서도 당신과 함께 해도 행복할 것 같아. 지금의 남편과 다음 생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나는 당신과 다시 만나도 지금처럼 사랑하며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그때는 절대 세트는 안돼. 난 세트 메뉴가 싫어. 부디 단품으로 만나자! 오직 당신 혼자!"




남편이 이 글을 읽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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