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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백삼홈 Aug 13. 2021

남편의 눈물

드라마보며 흘리는 눈물은 내 전문이었지만 이제는 남편 전문이 되어간다.

 의학드라마를 본 내공을 따지면 전문의 정도 자격은 되지 싶다.


 유독 의학 드라마를 좋아한다. 의대를  가서  맺힌 것도 아니고, 의료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웬만한 의학 드라마는   듯하다. 하얀거탑, 외과 의사 봉달희, 뉴하트, 골든타임, 닥터스, 낭만닥터김사부,슬기로운의사생활,그레이아나토미, 굿닥터,뉴암스테르담, 더레지던트등 거의 의학 드라마 중독 수준이다.

그레이아나토미는 시즌이 17회까지 있으니 정말 의학 드라마에 진심이다. 의학 드라마의 매력은 생명의 존엄과 배려, 긴장감, 액션, 사랑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의학 드라마에 공들이 다 보니 이제 웬만한 의학용어 정도는 대충 맞출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고, 그동안 의학 드라마를 본 내공을 합치면 단편의 의학 소설 정도는 써야겠지만 아직은 깜냥 부족이다.


tvn 슬기로운의사생활 공식 홈페이지


 요즘 슬기로운의사생활2(이하 슬의생)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아직 만난 본 적 없는 의사들의 이야기이다. 따뜻한 의사들의 말투, 환자를 배려하는 섬세한 감정이 돋보여, 자극적인 소재 없이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며칠 전 맘 카페에서 아이 때문에 대학병원을 찾았는데 그곳에는 슬의생에서 봤던 의사들은 없었다고, 얼마나 냉랭하던지 혹시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했던 것이 잘못이라며 정말 실망스럽다는 글을 봤다. 누구나 한 번쯤 현실 속의 슬의생을 기대한다. 대학병원에 가본 경험이 있다면 유머러스한 익준선생님도, 따뜻한 석형선생님도 존재하지 않음을 느낀다. (물론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따뜻하고, 훌륭한 의사가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길 진심 바란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현실의 대학 병원 생활이 어려움을 대략 머리로 이해하지만, 경험상 간절함을 가진 환자에게 감정 없이 대하는 의사와 마주하다 보면 기분이 상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득, 의사들도 슬의생을 보는지, 본다면 저건 그냥 드라마지 현실은 불가능하다고 치부하는지도 궁금해졌다.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건 내 전문인데 요즘은 드라마 보면서 눈물을 흐르기도 전에 말라버린다.이유는 바로 남편의 눈물 때문이다.


  육아의 퇴근 시간은 대략 10시이다. 본방송으로 볼 수 없어 매주 목요일 다른 채널을 이용해 남편과 슬의생을본다. 암전 상태에서 드라마를 보며 가끔 맥주도 마시고, 주말을 제외하곤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이야기하고 드라마 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특히,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를 싫어하는 남편은 신원호 PD의 잔잔하지만, 감동적인 작품을 좋아하는 듯하다.

슬의생은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들이 주 소재이다 보니 드라마를 보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드라마 보면서 우는 건 원래 내 전문인데 요즘은 드라마 보면서 눈물을 흘릴 틈이 없어 졌다. 이유는 바로 남편의 눈물 때문이다. 10년 넘게 종종 함께 드라마를 봤다. 감정에 복받쳐 울고 있는 나를 늘 위로해 주던 남편은 어디로 간 건지 몇 년 전부터 이제 조금만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 남편의 눈이 촉촉해 짐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이 줄어 들어 눈물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갱년기는 여성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증상처럼 여겨졌지만,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은 40대 이후 1년에 1.6%씩 감소해 기분의 변화, 지적능력 및 공간 지각력의 감소, 피로감, 우울감 등이 남자도 갱년기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호르몬 탓이겠거니 생각하지만, 남편이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남편이 전에 나에게 해 주듯 아무 말 없이 안아줘 볼까 생각해보지만 그러다 더 크게 울면 그 상황이 감당이 안 될 것 같고, 손을 꼭 잡아줄까 생각해봤지만 그러다 조금 창피해하며 쓸데없이 자존심 상해할까 봐 신경 쓰인다. 이제 감동적인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 또 눈물 흘리는 거 아니겠지?"라며 감동이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머리속에 여러 생각이 가득 차 감동 파괴가 시작된다.

슬의생의 8화는 우리 시대의 아빠, 엄마의 질환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심장질환을 앓아온 아빠, 치매일까 두려웠던 엄마, 딸이 신경외과 의사이면서도 엄마의 파킨슨병을 알지 못했던 딸, 엄마의 암 수술을 두고 다투던 남매의 이야기였다. 많은 생각이 들었고, 감동적이었지만 나에게는 최악이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갑자기 쓰러지셔서 병원 생활하시다 하늘로 가셨고, 시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지금 함께 사는 시어머님도 힘든 지병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의 주제는 나와 남편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눈물 포인트에서 슬쩍 곁눈으로 남편을 보았는데 눈물에 이어 콧물까지 슬쩍 흘러나옴을 발견 했다. 슬플때 눈물이 나는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남자가 눈물 흘린다고 어찌 되는 시대도 아니다. 차라리 슬프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는데 몰래 눈물을 훔치는 남편 때문에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감동할새 없이 드라마가 끝이 났다.


 앞으로 남편과는 신서유기나 아는 형님 같은 프로그램만 봐야 하나? 무서운 공포물이나 추리물만 봐야 할까? 눈물이 나올 것 같으면 먼저 선수 쳐 엉엉 울어 버릴까? 아무 말 없이 휴지를 전해줄까? 손을 잡아줄까? 매우 슬퍼 라고 말을 걸어 볼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돈다.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남편의 눈물에 공감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은 무엇일까? 다음 주에 또 무한 눈물샘을 자극할 슬의생이 방송되기 전 방법을 간구해야 한다. 마음이 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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