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육백삼홈 Aug 22. 2021

비 맞기 싫은 이유는 양말 때문이다.

비 맞기가 싫은 세 가지 이유

 하필 비가 내렸다. 며칠 전부터 폭풍 검색을 했다. 검색어 "코로나 교차 접종"

아스트라제네카를 맞았는데 이제는 화이자를 맞으라고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포기하던 차에 아스트레제네카를 원하면 맞아도 된다고 했다. 의학적 소견은 다 무시하고 왠지 같은 백신으로 맞지 않는 것에 대한 찜찜함을 지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의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니 권고하는 화이자를 2차 접종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살짝 덥지만 시원한 바람에 마음 속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는데 코로나19 백신 맞는 날 하필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병원에 가며 남편은 비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서울대공원 아르바이트 할 때 아무도 없는 동물원이 분위기가 참 좋았어. 비오는날 등산하면 재미 있을 것 같아, 애들이랑 비를 맞으면서 동물원 가보고 싶다, 비를 맞으면서 신나게 뛰놀고 싶네" 그러면서 왜 비 오는 날을 왜 싫어하는지 11년 만에 묻는다.


"나 비 오는 날 좋아해. 비 맞는 게 싫을 뿐이지"  

비 오는 날 창 넓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세상 행복하다. 큰창문에 떨어진 빗물은 눈물 같아 보이다가도 다른 빗방울과 합쳐지면 큰 물방울을 이루다 천천히 흘러내려 소리 없이 사라진다. 내리는 비와 빗방울을 보며, 책을 읽고, 커피를 끌어 앉고 있으라면 온종일도 가능할 만큼 바라보는 비는 애정하지만 비에 젖는 일에 굉장히 예민하다. 솔직히 말하면 비 맞는게 싫다.



 비 맞는게 싫은 첫 번째 이유: 내머리는 곱슬


 매직이라는 파마 기술이 발달하기 전 학창 시절 일명 스트레이트 파마라는 그 당시 획기적인 약이 개발되어 미용실도 아닌 집에서 책받침에 머리를 붙이고 언니들과 서로 파마를 해줬다. 스트레이트 파마를 하고 나서도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머리를 한올 한올 드라이로 폈던 학창 시절이었다. 습한 날 비에 맞으면 곱슬곱슬한 머리 때문이었다. 백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아침에 일어나 드라이 한 시간을 합치면 하버드대 입성은 식은 죽 먹기였을지도 모를 정도로 정성을 들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때의 고충은 매직이라는 파마 기술이 발달하면서 깨끗이 해소되는 듯했다.


 비 맞는게 싫은 두번째 이유:  젖은 양말

 비가 내리는 날 신발 안에 젖는 양말이 싫다. 신발 젖는 건 당연하고 신발 안에 스며들어 조금씩 축축해지는 양말을 신고 있으면 옷입은채 온몸이 젖는 느낌이다. 지금도 양말 신고 아이들이 한 두 방울 떨어트린 물방울만 밟아도 찝찝함에 새 양말로 갈아신는다.

 "비가 오면 양말 젖는 게 싫어. 양말이 젖으면 집에 가고 싶어져. 그래서 비오는 날 양말을 두 개씩 챙겨, 회사에도 양말을 가져다 놨었고, 금은보화를 준대도 정글의 법칙 출연은 못 할 것 같고, 비맞으면서 훈련하고 행군하고 군대도 못 갈 것 같아. 자긴 젖은 양말 괜찮아?"

"남자들은 군대 다녀오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찝찝함에도 잠을 잤다는 게 신기해. 젖은 양말은 좀 찝찝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비를 맞으며 함께 노는 건 평생 자기랑 못하겠다."

남편은 내가 귀여운  미소를 지었지만, 말을 끝내자 지금 비에 젖은 신발 속으로 스며든 빗물에 조금씩 양말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영화 어바웃타임


비 맞는게 싫은 세번째 이유 : 교문 밖에서 우산 들고 기다리는 엄마들 틈에 우리엄마가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일이지만 비는 이상하게도 하교 시간에 많이 내린다. 교문 밖에서 우산 들고 기다리는 엄마들 틈에 우리 엄마는 항상 없었다. 부모님 두 분이 맞벌이하셨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지만 어린 마음에 아주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쓰고 집으로 뛰어오던 그때의 빗물은 너무 차가웠고, 마음은 쓸쓸했고, 냄새는 외로웠었다. 그 때문일까? 유독 일기예보에 예민하고 비가 조금이라도 예상이 되면 우산을 꼭 챙겼다. 학교, 회사에는 여분의 우산을 꼭 가지고 다녔고, 비 맞기를 좋아하는 아들 학교 사물함에도 예비 우산을 넣어주고,  비 예보가 있는 날은 작은 우산을 가방에 꼭 넣어주곤 한다. 남편에게 말한 적 없지만 딸은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겨 보내고, 장화를 신지 않는 아들 가방에 비 오면 운동화 젖으니까 실내화 신기 전에 양말 갈아신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보조 주머니에 양말 한 개씩 넣어준다.  


 일이든 사물이든 좋고 싫음의 이유는 다양하다. 세 가지 이유 중 한 가지 양말 젖는 일 때문에 비가 싫다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어쩌면 언급한 세 가지 이유 말고도 백 한 가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라보는 보는 비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처럼 한바탕 비가 내리고, 맑은 하늘이 고개를 들면 기분까지 덩달아 상쾌해진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원두 향기가 가득한 커피 한잔을 들고 글을 쓰는 맛은 정말 끝내준다. 빗소리와 자판 소리의 합주는 어떤 멜로디보다 평온하고,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여 글이 잘 써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착각이 들 정도니까 말이다.

올해 장마가 있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짧았던 2021년의 여름은 이제 가을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시점에 있다. 오늘 처럼 짧은 시간에 강한비가 내리면 비 피해가 많아지기에 부디 가을 장마가 되지 않길, 비로 인해 피해 없이 바라만 보면 예쁜 비로 내려주길 바래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눈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