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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Dec 13. 2020

엉겁결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브런치북 <서른, 나답게 살아지기 시작했다>

문학소녀이던 소싯적 미처 끝맺지 못하는 소설을 쓰곤 했다. 열댓 살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써보는, 어른의 연애담에서 내 주인공의 나이는 27살이었다. 그 나이즈음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이든 생활이든 삶의 대부분은 그다지 거칠 것이 없어 그저 사랑에 눈물짓고 기뻐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나이. 그때의 나는 인생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브런치북 <서른, 나답게 살아지기 시작했다>도 비슷한 감상으로 시작된다. 우연히 얘기를 나누게 된 여중생에게 자신의 나이를 서른이라고 밝히자 흠칫 놀라더라는 이야기로 말이다. 서른이, 30대라는 게 어렸을 적 생각하던 것과 달리 얼마나 금새 다가오고야마는 숫자인가. 


[브런치북] 서른, 나답게 살아지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inthirties


작가는 30대를 맞아 '나답게'의 의미를 탐색하게 된다. 사회의 일반적인 성공의 가치를 좇으며 살아온 시간을 지나, 나를 나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일본의 소도시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만나고, '글쓰는 삶'이라는 새로운 소명을 발견한다. 그 소명을 유지하기 위한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이 과정에서 직업, 관계, 관용, 돈과 같은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다. 


작가는 지난날 나를 상처주었던 부모의 미숙함을 이해하고, 그 때의 부모님도 지금의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을 뿐임을 바라볼 줄 알게 된다. 베프라 부를 만한 오래된 친구가 없더라도, '삶의 한 단면에서 만큼은 신기할 정도로 통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감사하며, 시간 속에서 잊혀진 친구들도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소망한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취향을 추구하고 그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오롯이 집중한다. 포기라는 단어에 좌절감을 느끼기보다는 그를 통해 새롭게 열리는 가능성을 생각한다. 


이 글이 특별히 눈에 띄었던 것은 단연코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는 '나답게'란 무엇인지 늘 그 답을 찾아 헤맨다. 도대체 '나답게'라는 것은 언제부터 존재하는 걸까? 이를테면 갓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나답게'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나답게'는 유전과 환경이라는 고전적인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답게'가 탄생하기까지 우리는 세상과 끊임없는 이별과 만남을 반복해야 한다. 나답지 않은 외부의 가치관에 부딪치고 실망해야 그것이 나답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아 점차 나다움을 발현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나다운 나로서 세상을 마주하고 살아내게 된다. 


작가가 지나온 일련의 시간들도 비슷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특별하지 않다는 게 특별함의 핵심이랄까. 

나는 스스로 정립한 가치관이 아니라 내가 속한 좁은 사회로부터 강요된 삶의 공식을 따르고 있었으며, 주변 사람들마저 그 기준에 따라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개개인은 모두 다른 유전자와 경험, 관계, 생각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결합된 고유한 존재이며, 따라서 70억 인구가 있다면 행복의 모습도 70억개여야 한다. 

- 03화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고 있나요?

나다움이 70억개 존재하는 세상. 나와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70억개의 행복 중 1개의 행복을 읽는 일. 이 책을 읽는 나의 감상은 그랬다.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는 다소 진부한 말도 작가가 어떻게 그 문장을 마음에 품게 되었는지 이해하자 힘있게 다가왔다. 비루하게 느껴지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무리하게 멀리 볼 필요 없이 현재의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로 충분하다는 말에 위안을 얻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는 문장에 공감했다. 


다채로운 나다움으로의 탐색의 끝에서 이 글이 남기는 단단한 마무리가 있다면 그것은 태도이다. 삶에 대한 인정과 감사의 태도. 30대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가장 큰 차이를 만드는 것은 아마도 이 지점일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꿈꾸는 대로 화려하지는 않은 일일지라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주어진 현재에 감사할 줄 아는 태도. 한없는 초조함으로 대했던 일들을 너그롭게 수용하는 것이야말로 30대라는 인생의 지점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고 이 책의 곳곳에도 그런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그리고 수용에서 끝나지 않는 결심 또한 돋보인다. 크고 작은 불행에 쉬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더 성숙한 마흔을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 

그렇기에 책을 다 읽고나면 따뜻함과 함께 한없는 응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종종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 새 이만큼 나이를 먹었나 싶다. 이 나이면 완전한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고 우리도 어설픈 것 투성이라며. 그러다 우리의 늙음을 한탄하고, 그렇지만 몇년뒤에는 이런 말을 주고받은 우리 스스로를 괘씸히 여길거라며 웃는다. 아직 살아갈-늙을 날이 저만치 한참 남았는데, 라며.  


그래서 30대는 '나답게'를 생각해보기에 좋은 시점이다. 엉겁결에 시작해버린 어른의 의미에 대해서 돌아보기 참 적절하다. 아이에서 학생을 거쳐 사회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받아, 뭔지도 모르거나 혹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몇년의 인생을 정신없이 살면서, 타인의 일로만 느껴졌던 삶의 주제들을 하나씩 해치워내고 있노라면 삶의 정체성에 대해서 한 번쯤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 엉겁결에 어른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돌봄의 시간을 다른 이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브런치북 <서른, 나답게 살아지기 시작했다> 를 통해서 함께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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