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 Oct 22. 2021

분하다!

질투는 나의 힘


10대 시절 '분해서' 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세상일이 내 뜻대로 안되는 게 너무 답답해서 절로 눈물이 나왔다. 예를 들어 학교 내신 시험을 치렀는데 3개씩이나 틀렸다던가(그렇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재수 없는 모범생이었다). 


슬픔의 상징인 눈물조차 분해서 흘려버리는 내게 살면서 가장 강렬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존재가 있다면, 중학교 때 전교 1등을 하던 어떤 남자애이다. 대개 중고등학교에서는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이 성적을 잘 받는다는 게 학계 정설(?)인데, 희안하게도 우리 학교 확고부동의 전교 1등은 어느 학년에선가 나와도 같은 반이었던 J였다. 이 친구가 평범하게 국영수 정도만 잘했어도 나는 그렇게 분하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J은 음악도, 체육도, 그리고 미술까지도 늘 최고 점수를 받아냈다. 단소는 소리내는 것부터 난관이라 고생하고, 뜀틀은 자빠질까 매번 멈칫하고, 미적 감각이 빵점이라 미술이 제일 싫었던 나로서는 분해 죽을 것 같았다. 


최고로 약올랐던 건, 게임에서 질 때였다. 방과 후 친구들끼리 당시 한참 유행하던 크레이지 아케이드를 하면, 잠시 정신 판 사이 저 멀리서 J가 터뜨린 물풍선에 내 캐릭터는 맥없이 죽어나갔다. 카트라이더를 해도 J의 신들린 드리프트 실력을 능가할 수 없었다. 무슨 전교 1등이 게임까지 잘하나, 너무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분통이 터졌다.   




늘 비이성적인 수준의 이성을 추구하는 나에게 질투란 참으로 치졸한 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생각보다 질투심의 발로로 벌어지는 일이 많았다. 개인적 어려움을 겪던 친구가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축하를 하다가 친구가 그 '부자' 남자친구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미묘하게 질투심이 나더란다. 자신만의 확고한 인생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는 도전을 하는 동료가 한없이 부럽더란다. 


예술 작품에서도 질투는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장치로 자주 사용된다. 연극으로도 제작된 영화 <완벽한 타인>은 40년지기 친구들이 모인 집들이를 배경으로 그들끼리 서로의 성공과 소유를 끊임없이 시기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연극 <SWEAT 스웨트: 땀, 힘겨운 노동>에서도 20여년 넘게 공장 라인에서 고생을 함께 한 3명의 절친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면서, 그 중 한 명만이 관리직으로 승진하자 다른 친구가 질투심에 휩싸여 둘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에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심지어 다른 친구는 그 승진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니기까지 한다. 영화 <블랙 스완>에서는 더 무시무시한 질투심을 보여주는데, 프리마돈나가 되지 못한 채 무용수의 커리어가 끝난 주인공의 엄마는 결국 프리마돈나 역할을 따낸 딸을 축하한답시고 크림이 잔뜩 든 케이크를 사와 식단조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딸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과연 엄마는 딸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해준 걸까? 주인공 또한 자신이 가지지 못한 블랙스완으로서의 관능을 가진 다른 무용수를 질투하며 불안에 시달린다. 




나는, 또 우리는 왜 이런 유치하고도 격렬한 감정에 휘둘리나 싶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에 욕심이 없으면 굳이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을 거라고. J보다 성적을 잘 받고 싶었고, 하다못해 그 빌어먹을 백면서생을 게임에서라도 이기고 싶었다. 질투란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에너지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열심히 잘 살고 있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질투심이 불쑥 솟는 순간이 있다. 늘상 많은 게 분한, 질투심 많고 화 많은 나를 이해해보며 말을 건넨다.


너 참 열심히 살아내려 하는구나. 




이전 03화 법원에서 날아온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