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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Oct 22. 2021

법원에서 날아온 편지


어느 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우편이 한 통 날아왔다. 이게 웬일인가 놀라며 봉투를 뜯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으로 선정되었으니 모일 법원으로 출석하라는 내용이었다. 국민참여재판이라니! 배심원이라니! 미국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내게 벌어질 참이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앞뒤 두 줄로 늘어앉아 때로는 검사에게 때로는 변호사에게 휘둘리며 법정드라마의 갈등을 이끌어내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될지도 모른다니.

나는 흥분과 긴장 그리고 기묘한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영화 <어 퓨 굿 맨>(1992)의 재판 장면. 명확해 보이던 정의는 양측의 주장이 오고가며 어느샌가 흐릿해진다. 정의란 상대적인 것일까.




만년 지각쟁이인 나는 이날도 어이 없게 지각을 했다. 교대역이야 재수생 시절 매일 오가던 곳이라며 방심한 탓이었다. 그러나 다니던 방향도 아니고 더군다나 법원 건물까지 들어서는 건 처음이라, 나는 예정된 시간에서 30분은 지나서야 진담을 빼며 간신히 법정 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본인 확인을 거친 후 땀을 식히며 법정 뒤편 기다란 나무 의자에 착석했다. 이미 무언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출석을 했다고 무조건 배심원을 하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출석을 요구받은 것은 배심원 후보이고, 이 중에서 진짜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을 당일 현장에서 선정하는 것이었다. 어쩐지 법정 안에는 내가 영화 속에서 봤던 것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무작위로 일부 배심원을 선정한 후, 나머지 일부는 검사가, 또 일부는 변호사가 직접 배심원을 선정하는 방식이었다-마치 단체 게임에서 팀장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팀원을 고르듯이 말이다. 10번째, 11번째 배심원이 결정되고, 나는 검사측이 고른 마지막 12번째 배심원으로 선택되었다. 배심원에서 탈락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귀가해도 좋고 남아서 재판을 참관해도 좋다고 판사는 알려주었다.      

"늦게 오셨는데 배심원에 선정되셔서 다행이네요"

나를 확인해주던 직원이 내게 말했다. 무엇이 다행이라는 말이었을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온 보람이 있게 배심원으로 선정되어서 다행이다?




내가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된 형사재판의 개요는 이랬다: 재미교포출신인 피고인 A는 2년여 전 지하철에서 불법촬영혐의로 기소되었다. 그가 찍은 사진은 여성들의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에 대해 검사측은 명백한 성추행 의도를 가진 범법 행위임을 주장했다. 변호사측의 의견은 달랐다. A는 평소 <시크릿>이라는 책을 감동깊게 읽었는데, 그 책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가르쳤다고 했다. 이상형의 여자와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꿈이 있던 A는 그 이상형에 부합하는 여성을 보고서 참고 삼아 '구체적인' 사진으로 그 모습을 남기고자 했을 뿐이었다고 자신의 의도를 해명했다. 이러한 A의 의도를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는 A의 휴대전화 메모를 증거로 제시했다. A가 얼마나 진지하게 <시크릿>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 검사측은 피해 여성들을 증인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그녀들은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A와 그의 변호사는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 여성들에게 끼친 정신적 피해에 대해 깊게 반성하고 있으나, 결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행위는 아니었음을 거듭 강조했다.    


나의 손에 누군가의 인생이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A가 되었든 촬영당한 피해 여성이 되었든 말이다. 최소한 1/12만큼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검사와 변호사의 발언, 증거의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주어진 갱지에 사건의 세부사항을 들리는 대로 쉬지 않고 적어내려갔다. 학교 수업조차 그렇게 열심히 듣지는 않았을 거다.

"12번 배심원, 그렇게 열심히 적을 필요 없습니다. 발언은 모두 자료로 제공될 거에요."

나이가 제법 든 재판장은 마치 어린 막내딸을 귀여워하는 말투로 나를 제지시켰다. 나는 얼굴이 새빨게져 연필을 그만 내려놓았다.




최종변론이 끝나고 12명의 배심원은 법정 뒤 별도 공간에 모였다. 배심원 대표를 선출해야 했다. 풍체가 좋은 한 아저씨가 선뜻 대표를 자청했다. 그는 자신을 유명 대학병원의 학과장이라고 소개했다. 그를 빤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희안한 자기 소개라고 생각했다. 감투 있는 의사인 것과 좋은 평결을 내리는 것의 상관관계는? 저 사람은 의대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겠지? 아 나는 저 사람의 학생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토론-'평의'가 공식적인 표현이다-의 과정은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만장일치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사가 알려준 내용에, 변호사가 주장한 호소에 모두의 마음은 제각각이었다. 내 마음조차도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대개는 이게 웬 개소리요, 싶다가도 만약에? 라는 불안한 속삭임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즈음에는 나와 어떤 아주머니 두 사람만 유죄를 주장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죄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세는 '이런 사건으로 인해 A의 인생이 완전히 쫑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 않느냐'라는 의견이었다. 우리 둘을 옥죄여오는 집단의식의 압박을 느끼며, 아주머니는 '아니 그래도...'라고 더듬거렸다. 그러나 배심원 대표는 가차 없이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리고 아직 젊은 아가씨여서 그런가본데..."

우리의 훌륭한 대학병원 학과장님의 그 다음 말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국 배심원 12명은 무죄로 평결을 '만장일치'했다.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957).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본 이 고전 영화는 나에게 그날의 쓰라린 기억을 모조리 소환해냈다. 유무죄의 모호함과 만장일치의 압박감.

 



나는 세상이 뒤죽박죽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다시 법정의 배심원석에 앉아 있었다. 육신은 배심원석에 있어도 정신은 도통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평생 느낀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혼란이 내 온 존재를 사로잡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재판부에 배심원단의 평결이 전달되었고, 판사는 그 평결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때였다. 판사의 입에서 무죄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그러니까 문장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A는 오장육부에서부터 끓어오는 오열을 토해내며 피고석에서 무너져내렸다. 그것은 울음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환희라고 하기에도 기묘했다. 나는 더욱 깊은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체를   없는 충격에 사로잡혀 간신히 법정을 서는데, 저멀리 재판부의 판사 3명이 보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그들 뒤에는 법원의 좁은 창문이 있었고, 석양이 태평한 노란빛으로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들은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밝고 화사하게, 아무런 고민 따위 없는 얼굴로 서로 정답게 미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방금 내 손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했다. 누군가를 죄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내게 만장일치가 강요되었든 어쨌든 나도 1/12만큼 책임이 있는 결론이다. 그 결론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런 중압감에 짓눌려 당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나에게 그 얼굴들은 너무도 괴이했다.

너무도 괴이해서, 순간 그런 생각마저도 들었다. 나야 하루 잠깐 형법의 수행인이 될뿐이지만 저들은 매일 이런 일을 해야하겠지. 그 매번마다 나만큼 압박을 느끼면 도무지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야. 저들도 인간이고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걸. 그래서...지금 웃을 수 있는 걸 거야. 웃지 않으면 안되는 걸 거야...

판사 3명 중 한 명은 나와 같은 '젊은 아가씨'였다. 나는 유독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결코 알 길은 없었으나.  


천천히 법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어느 새 하늘에는 어둠이 내려왔다.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사이에도 세상이 많이 바뀌어, 만약 지금이었다면 결코 그때와 같은 평결이 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날 하루만큼 도덕과 정의에 대해 강렬한 충격을 느낀 날은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었다. 아니, 부도덕과 불의에 대해 강렬한 혼돈과 불쾌감을 느낀 날이 없었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나는 피고인의 울음 소리를, 판사들의 웃음 소리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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