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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Apr 13. 2022

딸의 공격성

탄탄한 내면의 힘 길러주기






언젠가 오은영 박사님의 강연을 듣다가 무릎을 탁 치게된 말이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공격성'이 중요하다는 말씀.


사람을 때리거나 해를 가하는 류의 공격성이 아니라, 누군가 나에게 해를 가했을 때 이를 여과없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보다 다시 되받아칠 수 있는 능력. 내면의 단단한 힘.


아이들에게 이런 류의 단단한 공격성과 자존감을 키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네 살 된 나의 딸은 한창 학교에서, 놀이터에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중이다.

모국어도 아닌 조그만 인간들의 세계에서 딸은 나름 고군분투 하며 나름의 입지를 다져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 딸은 가끔 영어가 딸릴 때가 많아서 억울한 경우를 종종 겪기도 한다. 한국어로는 충분히 이길만한 말빨을 지녔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사그러들었지만, 

몇 달 전, 한동안 딸은 나에게 와서 놀이터에서 당한 억울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보다 좀 큰 언니가 자기한테 "난 너랑 안놀아. 너 놀이터에서 놀지마!" 이랬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경험으로 봤을 때, 딸에게 직접적으로 저렇게 말하는 아이는 없다.

영어가 아직 좀 딸리는 나의 딸과 언어 그 이상의 정서적 교류를 하며 즐겁게 어울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언어가 답답하다고 딸과 안 어울리려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것에 기분 나쁘기보단 이 또한 어린아이 특유의 투명함이라고 생각한다. 말이 안통하면 안 놀고 싶을 수 있는 거다. 그래도 언어는 사람과 사람이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영역중의 지극히 한 부분이기 때문에, 딸과 언어 그 이상의 교감을 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아무튼 나의 딸은, 자기를 꺼려하는 그런 낌새가 느껴지면 자기에게 "너랑 안놀아" 라고 말을 한 것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종종 보았다. 같은 상황에서 제3자인 내가 봤을 때, 상대 아이는 단순히 침묵했을 뿐인데 딸은 자기를 거절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랄까. 



"엄마, 오늘 놀이터에서 어떤 언니가 나 너랑 안놀아. 너 놀이터에서 놀지마! 이랬어." 라고 말할 때,

뭐라고 답해줘야 하나, 난감한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래? 그 아이는 왜 그런데? 다같이 사이좋게 놀아야지."


혹은 


"아니야, 그 아이는 너한테 그런 뜻으로 말한게 아니야."


혹은 


"괜찮아, 너는 다른 아이랑 놀면 되지."


등등, 별 임팩트 없는 조언을 하며, 

이렇게 답해줘도 될까, 내 딸이 혹여 이런 상황이 나중에 상처로 남으면 어떡하지,  와 같은 

걱정들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딸은 딸대로 나의 조언이 성에 차지 않고, 자기를 충분히 위로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노하우가 생기기 마련이며 

샌드백을 때릴 수록 굳은살이 박히듯, 

드디어 적절한 답이 마침내 떠올랐다.



"다음부터는, 너한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 

너나 놀지마! 난 여기서 놀꺼야!" 


난 그순간 입가에 은은하게 번지는 딸의 미소를 보았다.


"(씨익) 알았어, 엄마."



정말 놀라운 순간이었다.

이게 사람 내면의 본성인가? 



많은 말들을 했지만, 딸을 웃게 한 나의 조언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회적 수많은 굴레들, 매너, 법, 체면 등이 

자신을 적절히 보호하는 것에 수많은 제약을 거는 것을 경험한다. 


"착해야 하니까."

"남들한테 피해주면 안되니까."


등등의 프레임으로 나 자신을 보고 내 아이를 보며 정작 자신을 보호해야할 탄탄한 공격성과 자존감을 잘 길러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리라. 


남들에게 피해주면 안되는 것은 맞지만, 누가 나에게 피해를 줄때 정당하게 반격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특히 소녀들은 더 이와 같은 윤리적 제약에 노출되어있다. 남들을 배려하고 양보하고 관계를 해치지 않는 등의 "여성적인" 특성들을 가지길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기대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수 없다면 내가 양보하여 지킨 남들과의 좋은 관계는 무용지물이다. 해가 될 뿐이다. 


우리는 딸들에게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한다. 그 다음이 타인을 향한 배려고 사랑이다. 단단하고 건강한 내면을 먼저 지켜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여성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윤리적 제약 (상대적으로 남성에게는 그런 것들이 덜 부과된다) 으로 인해 견고한 내면을 구성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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