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응원봉의 빛이 회복탄력성의 힘이다

by Lohengrin

폭풍의 시간을 지나 일상의 시간으로 돌아온 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도 정신이 멍멍하다. 탄핵소추가 국회를 넘어서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느라 쪼그라든 심장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걸 보니 트라우마로 목에 걸린 듯하다.


일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일상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사회현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날들이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과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생히 지켜봤다. 차가운 보도에 앉아 빛나는 응원봉을 흔들어 몸을 데웠고 힘껏 노래를 따라 불러 가슴속 울분과 처절함을 토해냄으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정치인들을 돌려세웠다. 그래도 파렴치한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을 것이라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버틴다. 개, 돼지도 성장한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새다.


장담컨대 국민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던 자들은 4년 후에는 다시 국회의원 선서문을 손들고 읽지 못할 것이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라고 했던 그 모습이 거짓이었음을 생중계로 봤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질이 권력에 대한 욕심 밖에 없음을 까발려봤기 때문이다. 4년 후엔 더 이상의 개, 돼지의 자비가 없을 것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 권력을 국민이 쥐어줬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지금이라도 옷 벗고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 오히려 속 편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국민을 대리하고 대변하라고 뽑아줬더니 자기의 권리이고 권한이라고 착각한 그 행태를 평가받을 것이다.


일상을 뒤흔든 만행에 대해 복수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만행을 옹호한 자들을 처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잘못 판단했고 어떤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알게 해 주자는 것이다. 개, 돼지도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오판하지 못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수준이 그 나라 국격의 수준이자 국민의 수준임은 부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수준 중에서 최악의 저질이 정치분야임은 부인할 수 없다. 작금의 사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늦게나마 눈치채고 반성한 몇몇 국회의원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땅바닥에 내동갱이 처진 국격의 수준을 한 순간에 끌어올릴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뛰어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 있다. 민주주의를 피와 함성으로 지켜낸 저력이 있고 어려웠던 국가 경제적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해 낸 국민적 열정이 있다. '회복(回復 ; recovery)'한다는 것은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회복하여 돌아갈 곳은, 정의가 살아있고 합리가 살아있고 따뜻함이 있고 궁극에 평화가 있는 곳이다.


계엄의 공포와 탄핵소추의 시간까지 원래 대한민국으로 회복하는데 열흘이 걸렸다. 겉으로 표현하고 드러내지 않았던 시민들의 심장에 잔다르크가 되고 나폴레옹이 되는 심장도 같이 뛰고 있었음을 보았다. 대한민국의 힘은 그 심장에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 뜨거운 심장으로 거꾸로 가려는 시계를 바로 잡아 놓았다. 잘못 가고 있음을 아는 순간 모두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정신이다. 과거로부터 경험한 트라우마를 재생하고 싶지 않았고 그 엄중한 세상을 자녀세대가 또다시 경험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니 계엄이 뭔지, 군대가 뭔지, 위수령이 뭔지도 모를 10대 중고생들조차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어떻게 지켜지고 지켜내야 하는지를 몸소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 됐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렇게 큰 획을 그었다. 시대를 잘못 읽고 삽질하는 부류들이 있어 민주주의는 지켜지는 것임을 재인식시켜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나 이 정도는 충분히 이겨낼 정도는 된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탄핵으로 인해 다시 일어설 근거를 마련했을 뿐이다. 시스템에 문제가 없는 것인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방향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고 이를 융합해, 이제는 앞으로 함께 나아갈 길을 같이 모색해야 한다. 한발 뒤로 물러서면 승냥이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게 국제 사회의 맨얼굴이다. 안에서부터 무너지면 밖의 공격은 막을 방법이 없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온 국민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이끌어낸 탄핵소추로 민주주의 절차가 살아있고 시민이 깨어있음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회복탄력성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망신을 신뢰로 바꾸어놓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직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시민의 힘은 응원봉의 화려한 불빛처럼 어둠을 수놓을 것이다. 불의를 감시하는 빛으로, 정의를 응원하는 빛으로, 뜨거운 태양이 되어 비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세상을 보는 눈높이의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