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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01. 2020

절대적 시각과 상대적 미각

'벌써' 7월입니다. '벌써'라는 부사를 먼저 쓴 것은 그만큼 빨리 왔다는 의미입니다. "나이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 인식의 기재는 이미 과학에서 사실로 증명해내고 있습니다. 허공에 금을 그어놓고 숫자를 부여한 인간의 업보로 인한 조급함이 '벌써'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기에 이릅니다. 그래 봐야 1년의 절반을 막 넘어서고 있을 정도인데 말입니다. 숫자는 그래서 의미입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변수로 다가오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는 단순한 숫자일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7과 1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야 한 달을 맞이하는 각오를 다지게 될 테니 말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마음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죠. 어제 뜬 태양이 오늘과 다르지 않고 내일 뜰 달이 오늘과 다르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물리학적인 질량의 변화야 인간의 인식체계를 넘어설 만큼의 미량으로 변화하겠지만 100년의 시간을 겨우 살아내는 인간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변화량입니다. 물리적 변화량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의미부여를 통해 물리량을 뛰어넘는 상상의 변화량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연의 물리량은 정해져 있지만 상상의 변화량은 제한이 없습니다. 무한대입니다. 이 의미부여의 상상이 세상의 관계를 재설정했습니다. 인간세에서만 통용되는 가치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미래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자연을 대하는 간사한 사람의 마음만 들여다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 이틀 지루한 비가 내렸습니다. 동해안쪽은 어마어마한 비가 퍼붓기도 했습니다. 며칠 햇빛을 못 보고 습기 찬 상태가 되다 보니 따사로운 햇살을 그리워합니다. 습기 차 끈적임이 싫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러다 일기예보에 오후부터는 비가 개고 낮 기온도 서서히 올라 30도를 향해 갈 거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짜증이 밀려옵니다. 예보되는 온도는 곧 끈적이는 땀이 되고 숨을 막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다 소나기라도 내릴라치면 "뭔 놈의 날씨가 이렇게 종잡을 수가 없어"라며 다시 투덜대며 우산을 펼 쳐들겠죠.

산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무엇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그 처한 시간과 환경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에 이유를 붙이고 합리화하며 사는 게, 사는 겁니다. 비가 오면 비의 환경을 벗어나기 위한 최적의 환경으로 태양을 그리워하고 해가 따갑게 내리비치면 시원한 그늘과 소나기를 떠올립니다. 환경에 적절히 적응하고 이겨내기 위한 역발상의 본능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환경에는 명징한 상쾌함과 맑음이라는 절대적인 미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꽃향기 은은히 전해지던 봄날의 그 어느 날과 하늘빛 푸르던 가을날 그 어느 날처럼 말입니다. 바로 시각에는 절대적 미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맛과 향, 소리는 상대적입니다. 미각에 절대 미각은 없고 냄새에 절대 후각 또한 없습니다. 듣는 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제각각 상대적으로 주파수를 감지해 냅니다. 각자의 건강상태, 취식 상태, 주변 환경 등에 따라 맛과 향은 변하고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의 향을 뽑아내는 바리스타며 와인의 향을 감별하는 소믈리에는 사실 사기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래도 절대 미각과 후각은 아니더라도 절대에 가깝게 간 사람이라고 그들을 지칭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말입니다.


실제 미국에서 똑같은 햄버거와 감자칩, 당근 등을 놓고 하나는 맥도널드 포장지에 싸고 하나는 일반 포장지에 싸놓고 맛을 비교해 달라는 실험을 한 자료가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 70%가 맥도널드 포장지로 싼 햄버거를 맛이 더 좋다고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천연물인 당근 조차도 맥도널드 포장지로 싼 것이 더 맛있다고 골랐습니다. 맛과 향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절대적 시각이 지배하면 맛과 향은 부수적인 것이 됩니다. 주변 환경에 지배를 받아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살아 남고 멋진 바리스타와 소믈리에가 있는 커피숍과 와인바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시각이 맛과 향에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기온에 대한 감흥과 날짜 바뀜에 의미를 부여함이 제각각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비가 내리면 해수욕장 튜브 대여 장수가 울고 해가 쨍쨍하면 우산 장수가 웁니다. 시장경제에서 이야기하는 환경은 이분법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두 물건을 함께 팔아 환경에 맞추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인간 심성의 감흥은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이 감정은 어떤 조건 어떤 상황에서도 움직일 수 있는 요물입니다. 한 곳에 머물기도 하고 끝없이 흩어지기도 합니다. 무어라 정의 내릴 수 없고 형체를 알아볼 수 도 없습니다. 사전적 정의야 "어떤 일이나 현상, 사물에 대하여 느끼어 나타나는 심정이나 기분"을 말합니다만 이 심정이나 기분 자체가 추상적 개념이라 경계를 넘나드는 형이상학적 표현일 뿐입니다.


결국 감정을 어떠한 말과 글이나 그림, 음악과 같은 표현 수단을 통하여 드러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하게 만드느냐가 관건입니다. 공감을 많이 이끌어내는 표현이 곧 현실을 대변하는 말과 글이 되고 정의가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 결국 인간의 언어였던 것입니다.


시각과 미각, 후각, 청각의 감각은 세상을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는 감각기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에 구속되고 동물은 감각에 구속된다고 표현합니다. 언어가 생각을 만들고 표현을 만들어 행동을 이끌어 냅니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저 빛을 햇살이라고 하고 그 뜨거운 햇살에 그늘을 만드는 짙은 초록의 형태를 나무라고 합니다. 햇살과 나무와 비의 자연조차 인간의 언어 속에서만 살아있습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없습니다. 본능만이 작동합니다. 비가 걷히고 점점 뜨거운 에너지를 전달할 태양에게 말을 걸어 언어로 작동시켜 봅니다. "7월 한 달은 너의 에너지인 햇살을 조금만 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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