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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이탈리아와 대한민국의 공통점

by Lohengrin

예술의 장인정신을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멋진 문구가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다.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문구로, 새로 지은 궁궐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조선시대 정도전이 이를 인용해 궁원을 지을 때 이러해야 함을 조선경국대전에서 표현한 문구이기도 하다.


미와 멋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한 문장으로 보여주고 있고 그 정수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와 멋을 바라보는 인간 심성은 호모 사피엔스의 공통된 시선인듯하다. 물론 시대에 따라, 민족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기준이 다르기에 싸잡아서 범주화할 수는 없다. 어떤 사회에서는 날씬한 사람을 미의 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또 다른 사회에서는 약간 통통한 사람을 건강미가 있고 아름답고 멋지다고 하기도 한다. 그때그때 미와 멋의 기준이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이라 할지라도 보편타당한 정서가 동시에 작동함도 부인할 순 없는 듯하다.


한민족에게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멋이 있는 것처럼 이탈리아에도 르네상스를 이끈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의 장신정신이 있다. 스프레차투라는 '경멸하다' '가치를 낮춰보다'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나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어려운 일일지라도 편안하고 쉽고 세련되고 우아하게 해내는 능력'을 지칭하는 말로 진화를 했고 '무심한듯하지만 세련되게, 유유자적하면서도 능숙하게'라는 함의가 있다.

스프레차투라의 르네상스와의 연결고리는, 겉으로 드러내는 부산함 없이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과시하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겸손하고 절제된 태도를 보이며, 진정한 실력과 숙련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표현하되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게 하는 고도의 장인정신과 맞닿아 있다.


이 스프레차투라가 패션의 감각에도 스며들어 양복 정장 재킷 윗주머니에 무심한 듯 들어있는 손수건이라든지, 발목이 살짝 보이는 바짓단 밑으로 구두와 매칭된 양말이 보였다 사라지는 그런 포인트로 등장한다. 패션에서는 '가장된 무심함'으로 미와 멋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프레차투라도 어원이 있다. 1528년 출간된 카스틸리오네의 '궁정인( II cortegiano ; the book of the Courtier)'에서 쓴 단어다. '궁정인'은 이상적인 궁정인의 덕성과 자질에 대한 교양지침서이자 궁정의 문화 규범을 담은 책이다.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에서 궁정인이 갖추고 피해야 할 덕목을 제시했는데 "아페타치오네(affettazione)를 피하고 스프레차투라를 행하라"라고 했다. 아페타치오네는 자신의 능력과 자질을 외부에 드러내려는 지나친 바람에서 나오는 과장이나 허세의 오류를 말하고 스프레차투라는 자신이 행하고 말한 바가 특별한 노력과 깊은 생각 없이 이루어진 것처럼 외부 시선에 비치도록 만드는 인간 행위의 최고 기술을 말한다.


최고의 기술은 기술이 보이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가 대종사 편에서 말하는 '장천하어천하(藏天下於天下 ; 천하를 천하에 감추어라)'와 경상초 편에 나오는 '이천하위지롱 작무소도(以天下爲之籠 雀無所逃 ; 천하를 새장으로 삼으면 참새가 도망칠 곳이 없어진다)'와도 이어진다.


세상의 미와 멋은 그렇게 보일 듯 말 듯 감출 듯 말듯하는 애간장이 있을 때 더 보고 싶어지고,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참 복잡 미묘한 게 인간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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