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가까운 지인들과 저녁식사 모임이 있어 시내에서 만났다. 같은 80년대 초중반 학번을 달고 있는 관계로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대학시절의 이야기들로 옮겨갔다. 역시 꼰대들의 추억팔이라 씁쓸했지만, 그나마 그런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더욱 반짝반짝거렸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고 내가 알고 있는 것,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을 끄집어낼 때의 그 간질간질한 자극이 오르가슴처럼 번지는 듯했다.
나는 83학번이다. 모임의 대부분 사람들이 80-85 학번을 달고 있다. 두서너 명이 거의 세대를 달리하는 90년대 학번 명찰을 달고 있을 뿐이다. 사회에서는 10살 차이 정도면 말 까고 친구 먹는다고 하는데, 80년대 학번과 90년대 학번의 차이는 한 세대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사상의 시대가 전개됐다. 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쳐오면서 생각과 사상의 변곡점이 발생했던 시기여서 그런 듯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것처럼 보였다.
지난 연말, 황당한 비상계엄의 철퇴를 얻어맞고 얼떨떨했던 것은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 초년생 때 살벌했던 총칼과 탱크의 위용 앞에 주눅 들어본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생생한 기억으로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제 모임에서는 너무도 황당하고 지질한 사건이기에 계엄의 계자도 꺼내지 말고 아예 입에도 올리지 말자는 합의가 있어 다행이었다. 괜히 입에 올려 혈압만 덩달아 올리지 말자는 현명한 생각들에 다들 동조했다.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다들 격동의 민주화 시대를 지나온 연륜이 있기에, 시대를 읽는 노련함 정도는 장착하고 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다들 알고 있다는 거다. 발본색원해야 함을 말이다.
그러고 나니 이야기들은 자연스럽게 그나마 기억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던 낭만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80년대 캠퍼스는 최루탄 가스가 안개처럼 잔디밭과 강의실을 휘젓고 다녔지만 틈틈이 웃음이 있고 우정이 있고 선후배의 넉넉한 어깨걸이가 있었다. 소주잔 사이사이로 찌그러진 막걸리 사발이 보이고 중국집의 벌건 짬뽕 국물이 오버랩된다. 교복세대들이 대학에 들어와, 시간의 자유를 획득하고 그 자유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횡설수설할 때의 그 황당함조차,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니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제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시절 전공한 학과를 취업의 발판으로 삼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나마 이공계 전공자들은 자기의 전공을 찾아갔지만 인문계 전공자들은 왜 대학을 다녔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분야로 흡수되어 갔다. 대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공채로 들어가 재교육을 받고 기업의 쓰임새에 맞게 재배치가 됐다. 적어도 80년대 학번이 취업을 할 당시에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였기에 그렇다.
그렇게 식탁 위의 음식들에 추억의 양념들이 더해져 대화의 소재들이 풍성해졌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그 안에서 경험하고 살아온 시간들은 달랐기에, 마치 생소한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양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준다.
말이 추억이지, 사실 과거를 꺼내 지금 이 시간의 해석으로 현실화시킨 것이다. 기억은 소환되는 순간, 과거가 아니고 항상 현실이 된다. 과거에 드라마틱하게 장식을 붙이고 서사가 덧씌워져 점점 영웅담이 되고 전설이 되어간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과거를 공유함으로써 그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과거를 떠올리는 이유는 이렇게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끝없는 확인 과정이다.
나의 좌표는 지금 어디에 찍혀 있는가. 내가 지금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은 구글 어스에서 확인하면 37°36'06"N 127°05'38"E이다. 지구표층의 지리적 위치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의 좌표는 어디에 찍혀 있는가? 시간의 좌표는 나이로 환산될 수 있겠지만 존재의 좌표를 찍기는 애매하다. 어디에 찍혀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에 찍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더 좋은 곳에 더 많은 곳에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추억을 소환하고 삶의 화양연화 시절을 끌고 오는 이유도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을 잊고자 함이며 미래의 시간을 화려하고 온화하게 꾸미고자 함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그러하다. 추억을 소환하든, 미래를 계획하든 즐거움의 연속 이어야 한다. 그래야 삶을 살만한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