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무기력이 휘감은 탑골공원

by Lohengrin

지난 금요일, 종각역 근처에 있는 '백부장집 닭 한 마리'에서 점심 모임이 있어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화창한 햇살에 바람도 없어 봄에 들어섰음을 살갗으로 느끼게 된다. 집을 나서며 걸쳤던 외투를 두서너번 바꿔 입게 할 만큼 바깥의 따사로움은 창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겨우내 입었던 스웨이드 외투를 벗고 가벼운 점퍼 스타일의 외투를 입었다. 그래도 전혀 찬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상쾌하게 다가왔다.


시내에서의 점심약속시간은 항상 시간과의 전쟁이다. 10분 상관으로 줄을 서 있느냐, 옆 테이블과 등을 맞대고 낑겨앉아 먹느냐의 촌각을 다툰다. 물론 파인다이닝이나 미리 룸을 예약해 놓은 럭셔리 중식이라면 예외일 테지만 말이다. 당일 모이는 멤버는 6명인지라 시간이 괜찮은 누군가가 11시 반까지 와서 좌석을 차지하고 주문을 해놓기로 한다.


혹시 몰라 약속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빠른 10시에 집을 나선다. 그런데 이런, 버스전용차선으로 달려서 그런지 1시간도 안되어 종로 초입에 버스가 진입한다. 시간이 남아도 너무 남는다. 할 수 없다.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 걷기로 한다. 종로 3가에서 하차를 한다. 지나는 길 오른편으로 탑골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11시도 안 된 시간인데, 어르신들이 삼일문 앞에 바글바글하다.


버스를 타고 종로길을 가끔 지날 때마다 탑골공원 앞에 모여있는 많은 어르신들의 모습을 익히 봐오긴 했지만 그저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어르신들은 무얼 하시는지 궁금했다. 들어가 보기로 한다.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를 많이 둔다고 하던데 이날은 장기 두는 어르신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 햇살이 따뜻해서 그런지 팔각정 계단에 앉아 햇빛바라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지배적이다. 다들 처음 나오신 것일까?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없다. 그저 멍하니 햇살의 내리쬠을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따뜻하다고 외투를 벗은 사람도 없다. 두꺼운 파카와 모자, 배낭을 메고 있다. 모습들이 비슷비슷하다. 약속을 하고 드레스코드를 맞춰 입고 나온 것처럼--- ㅠㅠ


좀비를 보고 있는 듯하여 내 눈에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을 텐데, 이 멍한 시선과 이 칙칙한 분위기에 빠진 상황들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문득 오징어게임 시즌2에 나왔던 탑골공원 장면이 떠오른다. 탑골공원에서 게임참가자 모집꾼이었던 공유가 노숙자와 어르신들에게 복권과 단팥빵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장면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선택한 복권의 허망함이 탑골공원을 휘감고 있는 듯하여 괜히 들어왔다는 느낌이 든다.


원각사지 10층석탑에 새겨진 아름다운 부조의 모습을 올려다보기도 전에 서둘러 발걸음을 정문으로 향한다. 공원 중앙에 있는 팔각정 계단에서, 여행을 온 일본인 처자 2명이 밝은 얼굴로 사진을 찍고 있다. 저 웃음과 어르신들의 좀비 같은 얼굴 표정이 전혀 다른 세상의 양면을 보여준다. 젊음과 늙음의 차이인가?


정문으로 나오자 똑바로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가득하다. 공원 벽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오고 멀리 빨간색 앞치마를 두른 무료급식소 운영 자원봉사자들의 모습도 보인다. 점심때 무료 도시락을 나눠주는 듯하다. 아직은 시간이 안돼 준비를 하는 모습인듯하다.

그런데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곳 중의 하나가 '허경영의 하늘궁'이다. 이 단체를 보는 시각들이 각기 다르겠지만 그렇게 좋은 이미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나한테만 그럴 수 있으니 오해하지 마시길--- 굶는 이에게 한 끼의 도시락은 생명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에겐 이 모습이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 시기에 시카고에서 '실직자를 위한 무료 수프와 커피, 도넛을 제공하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던 알 카포네가 떠올랐다. 갱들의 대학살극을 주도했던 공공의 적이, 시민들의 끼니를 해결하는 '시카고의 로빈후드'의 모습을 연출했다는 아이러니와 겹치고 있으니 말이다.


내 나이도 60 환갑을 넘었다. 탑골공원에서 좀비처럼 서 있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곧 내 모습이나 진배없다. 착잡한 마음이 약속장소로 가는 걸음 내내 따라온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분들조차 저렇게 맥없이 멍하니 앉아있고 그나마 끼니때마다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아 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저분들을 무기력하게 했을까? 한낱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하루하루 한 끼 한 끼 버텨야 하는 저 절망감은 어디서 기인했을까?


나도 멀지 않아 저 대열에 합류해 햇빛바라기를 하고 있지나 않을까 두려움이 덮친다. 저러면 안 되는데, 저러면 안 되는데 다그쳐본다. 좀비 같은 저분들의 일상에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 공원 한편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자연과학 강의라도 해드릴까? 돈 안 들이고 노는 법을 가르쳐 드릴까?


삶이 무력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마음을 다잡는 행동이 중요하다. 아침에 눈뜸에 감사하고 이 아침 맑은 공기와 밝은 햇살에 감사하며 혹여나 비 내리면 대지의 촉촉함에 감사해할 일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기적임을 알아야 그 안에 존재하는 내가 기적임을 알게 된다. 무기력과 좌절이라는 단어에 무너지면 안 된다. 긍정의 마음으로 전환을 해야 한다. 내가 살아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도 간단하다. 감사해하는 일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기쁨, 소중한 것은 모두 공짜이고 널려있는데, 내가 찾지 않았을 뿐이고 다가가 손에 쥐지 않았을 뿐이다. 밤 줍듯이 주워 내 마음의 창고에 담아놓으면 된다. 꽃몽우리 움트고 있는 매화와 목련의 간지러움도 느끼면 된다. 그렇게 살아내야 하고 기뻐해야 할 일들은 내 주변에 널려있다. 행복과 사랑과 기쁨은 내가 주워 담기 나름이다. 주우러 나가 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대적 한계, 인식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