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ul 09. 2020

시원한 상상으로의 치환

여름은 태양의 계절이자 물의 계절입니다. 전혀 다를 것 같은 태양과 물의 요소가 같이 어울립니다. 태양빛 내리쬐는 바닷가와 나뭇잎 사이로 살랑살랑 사라졌다 나타남을 반복하는 계곡의 햇살도 물 위에 있습니다. 서로 순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가 빠지면 바로 수성과 화성과 같은 생명이 없는 행성이 됩니다. 생명은 그렇게 순환의 고리 속에 박혀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아침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습니다. 낮에 엄청 더울 것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남녘부터 장맛비가 다시 올라올 것이라 합니다. 이미 이웃나라 일본의 남부 규슈지역에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는 등 하루에 무려 480mm가 내려 일본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답니다. 장마전선이 일본에 머물며 비를 대지로 모두 내려놓고 한반도에는 적당량만 가지고 오기를 바랍니다. 너무 이기적일까요? 자연현상에 인간의 이기심을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겠지만 인지상정이라고 한반도에 장마전선으로 인한 피해가 없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큽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아직 장마라고 느낄만한 비 내림은 없는 듯합니다. 서울에 살아서 그런 느낌이 강한 것 같긴 합니다만 며칠씩 계속 지루하게 내리는 장맛비의 기억이 올해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 2~3주 내로 장마전선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비를 뿌리겠지만 일본처럼 무지막지한 폭우로 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른장마를 지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우리 심성에 있어 장마가 주는 이미지는 약간은 습함, 어둠, 칙칙함 같은 음산함이 먼저 떠오릅니다. 장마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사전적 뜻은 "여름철에 여러 날에 걸쳐 내리는 비"를 지칭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면 여름철에 적도지역의 뜨거운 해양에서 발생하는 북태평양 고기압과 중위도 지방인 오호츠크 지역에서 발생하는 한랭전선인 오호츠크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한반도가 위치하면서 형성된 것입니다. 커다란 두 기단이 만나서 힘겨루기를 하다 보니 세력이 비슷할 때는 전선이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몇 날 며칠이고 비가 계속 내리게 됩니다. 두 기단이 머금고 있는 수증기를 모두 내려놓던가 아니면 한쪽 기압의 세기가 약해져 빗줄기가 앞 뒤로 물러나 왔다 갔다 하는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장마라고 칭해 왔습니다.

'장마'는 순우리말인가 봅니다. 한자일 거라 생각하고 사전 검색을 해보니 한글로만 표기되고 한자로는 구우, 임우라는 단어가 장마와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쓰여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 개인적인 사견을 달아 단어 해석을 해볼까요? 저는 긴 장 長 마귀 마 魔 자로 써서 계속되는 비가 마치 악마같이 끈덕지게 내려 피해를 주고 있는 시기를 '장마'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장마는 긍정적인 덕 보다는 피해를 더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농작물을 망치고 하천 주변을 침수시키고 산을 허물고 다리를 떠내려가게 합니다. 장마기간은 말 그대로 악마가 할퀴고 간 상흔이 더 깊게 남습니다. 태풍이 함께 지나가는 장마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마'의 뜻은 호감이 간다기보다 시련의 시기, 우환의 시기를 뜻하는 대명사가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물의 시기라는 장마가 있어야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계곡물이 되고 수영장의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상선약수의 본래의 기능은 샘물처럼 솟아나는 청량감도 함께 있습니다. 자연은 더함이 있으면 부족함도 상존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평형을 이룹니다. 높게 보고 깊게 보면 세상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입니다. 비 내림이 누군가에겐 끈적이는 습기의 원천으로 다가가겠지만 깊은 계곡 속의 청량한 물웅덩이에 발 담그고 있을 수 있게 하는 모습으로도 다가옵니다. 그러면 반가움으로 다가옵니다. 고마움으로 작동합니다. 시원한 상상으로 태양을 바라보면 뜨거움도 따뜻함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늘로 그늘로 오늘도 잘 피해 다니시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보냅니다. 오늘 더위를 잊게 할 청량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만 보이고 나는 안 보이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