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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3. 2020

기억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 필름이다

장마전선이 북진을 계속하여 기어코 서울까지 입성을 했습니다. 지난밤부터 창문을 계속 두드리며 입성 소식을 알립니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릴 기세입니다. 월요일 출근길에도 이어집니다. 현관에 놓인 우산꽂이에서 어떤 우산을 꺼낼까 잠시 고민해 봅니다. 긴 장우산을 쓰고 가야 덜 젖을 것 같아 미련 없이 긴 우산을 꺼내 듭니다. 전철에서 들고 있기도 불편하곤 하지만 불편보다는 비에 젖지 않는 실용성이 우선합니다.


우산을 최대한 낮게 붙잡고 걷습니다. 대지와 우산과의 공간을 최소화해야 들이치는 비를 덜 맞을 것 같아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골바람이 불어대는 탓에 비가 옆으로 들이칩니다. 백팩과 신발이 빗방울에 서서히 젖어듭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최소한으로 젖으려면 빨리 걷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종종걸음으로 전철역까지 갔더니 그나마 물에 빠진 생쥐꼴은 안되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출근길만 아니었다면 그저 바짓가랑이 둥둥 걷어 올리고 맨발로 천천히 공원을 산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가끔 아침 조깅에 비를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좋을 때가 있습니다. 어차피 땀에 젖기에 비로 젖는 것은 조깅할 때 만나는 특별한 이벤트 같은 희열이 있습니다. 빗속을 뛰면 미친놈처럼 보이겠지만 뛰는 놈은 아주 기분이 상쾌합니다.

비와 장마를 대하는 아침의 자세는 그렇습니다. 출근길에 만나는 비는 불편과 축축함을 주는 그런 존재로 다가오지만 그래도 본격적인 여름의 햇살을 마주하기 전에 쏟아붓는 빗줄기의 시원함 또한 여름의 한 모습이기에 반드시 그려져야 할 요소로 작용합니다. 없으면 서운한, 그렇다고 있으면 지루한 뭐 그런 존재로 장마라는 녀석은 우리의 정서에 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도시에 사는 범인의 생각입니다. 시골에 산다면 논에 물을 뺄 도랑을 만들고 처마의 빗물받이도 손보고 바빠질 겁니다. 세상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보고 싶은데로 보고 평가하고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루하게 며칠씩 계속되는 장맛비 속에 있으면 뽀송뽀송한 햇살을 기다릴 겁니다. 아예 비의 본질인 물의 세계의 비경을 찾아 비 내리는 강가나 바닷가로 가기도 합니다. 원래 물속에서 발원한 존재들이니 물속에 있는 것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물로 다시 돌아간 고래가 현명한지도 모릅니다. 이미 시작된 지루한 비속에서는 나무도 잡초도 나뭇가지 위의 참새도 인공의 보도 위도 온통 젖게 되고 풋풋한 흙냄새가 코끝으로 다가올 겁니다. 장맛비에 잠시 흐르던 도랑물을 막고 놀던 어린 기억까지도 끄집어냅니다.


기억이란 참 묘한 것입니다. 어디에 숨겨놓았을지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하지만 한번 트리거 되면 줄줄이 이어져 나옵니다. 브레인의 기억 저장 방법입니다. 순서화입니다. 하나를 건드리면 순서에 의해 다음 단계는 당연히 이어집니다. DNA의 염기서열과도 같습니다.


이 기억의 트리거로 글이라는 외장하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개발한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닐까 합니다. 글이란 참 묘합니다. 현재까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지능입니다. 글은 언어의 다른 표현입니다. 영국의 고고학자인 윌슨이 "마음의 역사"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지능 5가지를 언어 지능, 사회지능, 기술 지능, 일반 지능, 자연지능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동물에 따라 일부 기능들은 보유하고 있지만 언어지능 중에서 글을 통해 생각과 기억을 후대에 물려주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독특한 것입니다.


2,500년 전 공자와 노자의 생각을 지금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기억의 전달에 있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로 인해 인간은 언어가 갖는 '의미의 장'에 갇히게 됩니다만 실존이 아닌 추상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글의 발달은 인간을 지구 상의 최상위 존재자로 군림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처럼 매일 쓰는 아침 글들이 모여있는 편지함을 보면 1년 전, 2년 전, 3년 전 오늘의 사건들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기억의 군집을 불러내는 트리거 역할을 글의 기록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그렇고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그렇습니다. 기록되지 않으면 역사 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어야 미래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DNA로 각인하여 전달하던 유전자의 전이는 이제 호모 사피엔스의 기록의 발명으로 쇠퇴될 기능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기록의 문화는 인류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해왔습니다. 예전 글들을 본다는 것은 기억의 지평선을 넘어오는 사건들을 조합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이란 그런 것이구나' 기록의 생생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되새기게 됩니다.


지금 글들이 어떤 기억들로 전달될까요? 신변잡기일 수 도 있고 하찮은 넋두리 일 수도 있으며 기상청 날씨 전달과도 같은 이 글이 조금 먼 미래에 어떤 의미를 전달할까요? 새로운 해석을 붙이고 글을 쓸 때의 감정과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곰곰이 생각하게 될까요? 기억의 기록을 그렇게 하나씩 끄집어내어 널어봅니다. 색이 바래지 않고 좀 더 강하고 두꺼운 검은색 글자들로 새겨지게 말입니다.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일주일 일정이 빼곡히 적힌 기록들을 살펴보고 혹시 잊고 있는 것이 있는지 체크해 봅니다. 일상을 다잡는 한 주일의 시작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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