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들이여! 키오스크 주문, 그냥 들이대시라

by Lohengrin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식당의 풍경이 빠르게 달라진 것이 있다. 요즘은 웬만한 음식점에 가보면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테이블마다 주문용 태블릿 단말기가 놓여 있다. 과거에는 홀 서빙 직원이 친절히 다가와 주문을 받고, 메뉴에 대해 설명해 주며 웃음 섞인 말을 건네던 모습이 익숙했지만, 요즘은 무인 주문 시스템과 로봇 서빙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고객은 자리에 앉자마자 태블릿을 통해 메뉴를 선택하고, 카드로 선결제를 마친 뒤, 물은 셀프로 가져오고, 수저는 테이블 옆 수저통에서 꺼내 쓴다. ‘말이 필요 없는 식당’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나 기술의 진보 때문만은 아니다. 인건비 부담, 인력 관리의 어려움, 팬데믹 이후 비대면 문화의 정착 등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점점 더 많은 식당들이 사람을 줄이고 기술을 늘리고 있다. 음식이 조리되면 음식배달 로봇이 테이블까지 조용히 운반해 주며, 카운터에서의 짧은 눈 맞춤조차 생략된다. 그런데 이처럼 완벽한 효율 속에서 의문이 생긴다. 식사는 오직 배를 채우는 것일까?


음식의 본질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 관계를 맺고, 위로를 받고, 감정을 나눈다. 눈치 빠른 매니저가 손님의 표정을 읽고, 말없이 물을 리필해 주거나 적절한 메뉴를 추천해 주는 그 순간 속에 사람 냄새가 있다. 배가 많이 고파 보이는 손님에게는 금방 나오는 요리를 권하고, 일행의 구성을 보며 맥주인지 소주인지 짐작해 메뉴를 제안하는 직감. 이 모든 것이 인간적인 식당, 감각이 살아있는 식당의 본질이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정성과 효율성 면에서는 탁월한 장점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어제는 종로에서 오랜 지인 다섯 명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날씨가 더워지며 메뉴는 냉메밀 국수로 정했다. 장소는 종로 1가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광화문 미진’. 11시 20분쯤 도착했더니 식당 앞은 이미 인산인해. 11시 10분에 먼저 도착한 지인이 받은 대기표는 무려 42번째였다. 출입문 앞 단말기에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대기번호가 생성되고, 순번이 줄어들 때마다 실시간으로 휴대폰에 안내 메시지가 온다.


"홍길동 손님! 1층 안쪽 테이블로 들어가세요"라고 외치는 인간미는 없지만 그래도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식당으로 들어갈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공평성을 담보하고 있어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선 모습이 아닌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60대에 접어든 시니어들에게는 아직 주뼛주뼛한 상황이다. 시니어들의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가 젊은 세대와 호흡을 맞추기에는 동작이 느리기 때문이다.


어제도 '광화문 미진'에서 식사를 하고 길 건너 '커피 빈'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려고 건너갔다. 12시 반 정도 되는 시간이라 점심식사를 끝내고 밀려드는 직장인들이 커피전문점에 가득하다. 역시 주문은 키오스크 주문이다. 일행 중 제일 연장자(그래봐야 나보다 한 살 많은 연장자시다 ㅠㅠ)께서 커피를 사신다고 하여 "아아 둘, 뜨아 셋'을 사기 위해 키오스크에 줄을 서시고 나머지 일행들은 빈자리를 찾아 테이블을 연결하여 겨우 좌석 확보를 한다. 한참을 기다려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친 연장자분께서 진동벨 번호 2번을 들고 자리를 찾아오신다. 그러면서 "제대로 주문했는지 모르겠어요. 내 뒤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서 대충 누르고 카드 넣고 했는데 ---" 순간 다른 일행들이 잠시 멈칫하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10분 기다려도 진동벨이 울리지 않으면 주문카운터에 가보시지요. 혹시 주인 못 찾는 커피 다섯 잔이 있으면 들고 오시면 될 듯합니다" "5분 지나도 진동벨이 울리지 않으면 다시 주문하러 가셔야 할 듯한데요" "신용카드 결제는 되었는지 확인 한번 해보시지요" "다른 테이블 진동벨 들고 오셨을 수도 있을 텐데 잘 살펴보세요"


물론 농담 삼아 오고 가는 대화긴 하지만 시니어의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염려가 은근히 배어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키오스크는 알고리즘이다. 일정한 흐름과 선택에 따라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절차의 연속일 뿐이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이 익숙하지 않으면, 어느 한 단계에서 멈춰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생략 가능한 항목은 무엇인지, 취소하려면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이 모든 과정은 연습을 통해 익숙해져야만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다.


시니어 세대가 이 기술의 흐름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자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꾸 사용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순서의 나열일 뿐인데,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못 해’라고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포기가 반복될 때, 결국 디지털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는 점이다.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그 혜택도 분명하다. 그러나 식당이나 카페라는 공간이 단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장소’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음식이 가진 사회적·정서적 가치를 놓치게 된다. 결국 외식의 본질은 ‘경험’이며, 그 경험에는 맛, 분위기, 대화, 교감이라는 요소가 빠질 수 없다. 그렇기에 자동화가 아무리 진화해도, 인간의 손길은 반드시 필요한 곳이 있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설명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도,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는 ‘느낌’과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는 ‘무인’을 향해 가고 있지만, 식사는 ‘사람’을 향해 가야 한다. 기술과 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는 식당이나 카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기술이 인간을 돕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서비스를 보완하고 더 빛나게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자리 잡기를 해야 한다.


참! 커피빈 커피는 제대로 나왔냐고요? ㅎㅎ 제대로 주문되어 진동벨 울리고 잘 찾아오고 잘 마셨습니다. 하면 되고 해 보면 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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