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상태를 재 정의해 볼 때

by Lohengrin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고, 우리 자신도 매 순간 변화한다. 그것을 '살아있다'라고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예측하려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물리법칙이 그렇고, 수학적 관계가 그렇다. 변화하는 현상을 기술하는 불변의 원리들 말이다. 과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변수를 찾는 것이다. 온도, 압력, 속도, 농도... 이 모든 것들은 변한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보일의 법칙, 뉴턴의 운동법칙, 열역학 법칙들이 그렇다. 변화하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 이것이 과학의 본질이다.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이를 금지한다. 하지만 전자가 특정 영역에 존재할 확률은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태함수의 힘이다. 정확한 위치 대신 확률적 분포를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미시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상태함수는 단순히 물리학의 개념을 넘어선다. 우리의 감정 상태도 마찬가지다. "오늘 기분이 좋다"거나 "짜증이 난다"라고 할 때, 이는 복잡한 신경화학적 상태의 총체적 표현이다. 세로토닌, 도파민, 코르티솔 등 수많은 신경전달물질의 농도와 분포, 뇌의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활동,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느끼는 하나의 '상태'를 만들어낸다.


꽃이 피는 현상을 생각해 보자.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놀라운 복잡성이 숨어있다. 토양의 수분 상태, 대기의 온도와 습도, 태양복사의 강도와 스펙트럼, 식물 세포 내 분자들의 농도, 유전자의 발현 패턴... 이 모든 상태변수들이 정교하게 조율되어 꽃봉오리가 터지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꽃이 폈다"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분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수십억 개의 화학반응이 있다.

모든 자연과학이 확률로 통합된다는 것은 20세기 과학의 가장 놀라운 발견 중 하나다. 뉴턴의 시대에는 우주가 거대한 시계와 같다고 생각했다. 초기조건만 정확히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양자역학과 카오스 이론은 이런 결정론적 세계관을 뒤흔들었다. 양자역학은 "결정론적 확률론"이라는 모순적 표현으로 설명된다. 개별 입자의 행동은 확률적이지만, 확률 자체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결정론적으로 진화한다. 이는 마치 동전 던지기에서 각각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많이 던지면 앞면과 뒷면이 거의 같은 비율로 나온다는 것과 비슷하다. 통계역학은 이 원리를 거시세계로 확장했다. 기체 분자 하나하나의 운동은 예측할 수 없지만, 수많은 분자들의 집단적 행동은 온도와 압력이라는 거시적 상태로 정확히 기술된다. 개별적 우연이 모여 집단적 필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파르메니데스의 명제는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현실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양자역학에서 입자는 동시에 여러 상태에 존재할 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은 상태와 산 상태의 중첩이다. 관찰하기 전까지는 "있으면서 동시에 없는" 상태인 것이다. 이런 모순은 일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계속 변하면서도 동일한 '나'로 남아있다. 몸의 세포는 몇 년마다 모두 바뀌지만, 기억과 성격을 통해 연속성을 유지한다.


상태가 존재 자체라는 관점은 깊은 철학적 함의를 갖는다. 우리는 흔히 존재를 고정된 실체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과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無常)의 개념과도 통한다. 모든 것은 일어나고(生), 머물다가(住), 변화하고(異), 사라진다(滅). 현대 생물학도 같은 관점이다. 생명체는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정보의 패턴이다. DNA는 정보를 저장하고, 단백질은 정보를 실행하며, 신진대사는 정보를 유지한다. 우리의 몸은 끊임없이 물질을 교환하면서도 정보 패턴을 보존함으로써 '살아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심리학적으로도 자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구성되는 내러티브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지금의 행동을 결정한다. 자아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정의되는 상태다.

"내가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의 시작이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가 바로 이것이다. 과학의 발전도 우리가 모르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었다. 개인의 성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학습의 첫걸음이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불리는 이 능력은 자신의 인지과정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 부분은 더 공부가 필요하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이 진정한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 양자역학이 보여주듯, 우주는 본질적으로 확률적이다.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확률적 이해는 가능하다. 삶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선택을 할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상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물리적 상태, 정신적 상태, 사회적 상태, 지적 상태... 이 모든 차원에서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자기 분석을 넘어선다. 상태를 정확히 인식한다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현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과정의 한 지점임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의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주가 우리의 직관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복잡성 속에서도 패턴과 질서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도 주었다. '상태'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미 있는 예측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현재 상태를 돌아보고 다시 정의해 볼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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