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치고 제주도 안 와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만해도 그렇다. 대학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1989년부터 지금까지 35년 동안, 적어도 1년에 1-2번은 내려왔다. 제주도와의 인연이라고나 할까? 이상하게 많이 내려왔다.
이번처럼 가족여행만 해도 열 번은 넘게 내려왔다. 회사 일로도 내려오고 사회 지인들과 한라산 등반하느라 내려오고, 올레길이 한창 유행일 때는 코스 완주한다고 내려오고, 골프를 치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에는 골프 치느라 내려왔다. 심지어 제주에 내려올 일이 없는 해에는 제주가 고향인 회사동료의 부친상 조문하느라 내려오고야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에는 회사가 한 달 일하고 한 달 쉬는 통에, 그해 가을에는 큰 딸아이와 한 달 살기로 내려와 있었다. 한 달 살기를 하느라 목포에서 차를 배에 싣고 건너와서 서귀포 레지던스에 절반, 애월로 넘어가 펜션을 빌려 절반을 살았다.
사실 제주를 오갈 때마다 매번 목적이 있기에 거기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골프를 치러 왔을 때는 골프 치는데 전념하다 보니 공항에 내려 바로 골프장으로 갔다가 맛집 들러 저녁식사하고 호텔에 투숙했다가 다음날 다시 골프장 가서 운동하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서울로 올라가는 패턴의 반복이다. 제주에 내려와 골프 쳤다는 데 의미가 있을 뿐 제주의 어떤 속살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나마 가족여행으로 내려와야 속속들이 찾아가고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그렇게 수없이 내려왔어도 어디 가서 뭘 보고 뭘 먹어야 하는지는 항상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신기하게도 매번 내려올 때마다 안 가 본 곳이 있고 안 먹어본 음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가족여행만 해도 그렇다. 산방산 밑에 숙소를 잡았던 적이 서너 차례 있었음에도 용머리해안 안쪽 트레일로 들어가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들어가 봤다. 매번 파도가 너무 높아서 안되고 개방시간을 못 맞춰서 발길을 돌렸던 적도 있다.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계절에 맞게 피는 꽃들이 다르듯이 이 타이밍은 여행의 분위기와 발길을 달리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지금 6월 말 제주는 수국이 만개해 있다.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서도 제주 곳곳을 다 찾아다녔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못 가본 곳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 타이밍이 다르기에 매번 새로운 곳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미술관과 박물관 심지어 수목원 가든까지 그렇게 많이 생기는지 제주에 내려올 때마다 새로운 가 볼 곳들이 만들어져 있다. 어디로 가서 무얼 할 것인지는 누구랑 같이 제주에 왔는지에 따라 취향에 맞게 동선을 짜면 된다.
먹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네 식구의 식성은 각기 다르다. 나는 다리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고,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 빼고 다 먹는 식성이다. 안 먹은 지 20년은 된 듯하나 보신탕도 먹었다. 큰 딸아이는 식성이 나와 비슷한데 막내 녀석 식성은 지 엄마를 닮았다. 안 먹는 것이 있다. 제주에 해장국 집들이 즐비한데 와이프와 막내 녀석은 선지나 내장, 순대가 들어간 것을 못 먹는다. 소위 비위가 약해 돼지냄새가 약간 나는 것들을 싫어하는 음식취향이다. 그렇다고 해장국집의 맛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말이다. 요즘은 식당마다 내장이나 순대를 넣지 말고 끓여달라고 하면 맞춰주기에 함께 식사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관광 지도나 맛집 지도 하나씩은 휴대폰에 저장해 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장된 정보는 과거의 정보일 뿐이다. 요즘은 휴대폰 검색으로 가볼 곳, 먹을 곳 등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어딜 가지? 뭘 먹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검색의 시대를 지나 AI의 시대다. 물어보면 바로바로 추천을 해준다. 어제는 오전에 넥슨컴퓨터박물관에 가서 추억의 갤러그와 카트라이더 게임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고 오후에는 협재해수욕장에 내려와 바닷물 속에 있었으니 오늘은 무얼 했으면 좋을지 물어보자. 어디에? 큰 딸아이에게. 이번 가족여행의 가이드와 내비게이터는 큰 딸아이가 도맡아 하고 있다. 나는 내비게이터를 찍으면 그 장소로 데려다주는 운전수이고 와이프는 맛집 식당에서 신용카드 내미는 계산원이다. 그렇게 가족여행 중이다. 제주도는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새롭다. 익숙한 듯 낯선 제주를 다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