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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15. 2020

젖은 셔츠는 살아있음의 증표다

장맛비가 이틀 동안 내려서 그런가요? 오늘 아침은 상쾌한 공기와 구름이 끼어있긴 하지만 맑은 하늘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변화하는 기온과 공기와 하늘의 색깔 속에서 고락과 희열이 뒤섞인 인간군상의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흐리면 흐린 색감으로 침잠할 수 도 있고 흐린 감성을 벗어나고자 밝음으로 치환하여 탈태하기도 합니다. 자연의 현상에 따라 마주하는 인간의 자세는 참으로 다양하고 변화무쌍함을 지켜보게 됩니다. 오늘은 어떤 모습과 자세로 삶의 시간을 마주하게 될까요?


오늘은 출근길 복장으로 양복 정장을 택했습니다. 저녁에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어서입니다. 넥타이는 매지 않기로 합니다. 긴팔 셔츠를 오랜만에 입고 재킷도 걸칩니다. 회사가 자율복장을 실시한 이후로 양복을 갖춰 입을 일이 가물의 콩 나듯 합니다. 대외 행사 참석과 같은 일이 아니면 보통 카디건이나 반팔 셔츠, 청바지 차림에 백팩을 메고 출근을 합니다. 양복과 넥타이는 이제 형식의 전형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예식장이나 장례식장 같은 곳에나 입고 가는 정도로 말입니다.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셔츠에 재킷까지 입었더니 전철을 타고 오는 동안 살짝 땀이 배어납니다. 체온이란 녀석도 참 간사하죠. 재킷 하나의 무게와 보온으로 인해 바로 땀을 내서 36.5도를 유지시키니 말입니다. 재킷을 벗어 한 손에 들었습니다. 훨씬 시원해지는군요.

땀은 인체가 만들어내는 물입니다. 에너지 대사를 하고 남은 부산물이 이산화탄소와 물입니다. 인간은 물을 만드는 생물입니다. 땀에 젖은 셔츠를 가만히 내려다볼 일입니다. 구름과 비와 햇빛의 순환의 결과와 똑같은 현상이 내 몸에서도 일어나는 현장입니다. "하늘의 색깔, 행성의 궤도, 호수 위의 잔물결과 잔상, 눈송이, 하늘을 나는 새의 무게, 빗방울의 크기 등은 자연의 법칙에서 생겨난 필연적 결과"임도 알게 됩니다. 존재 그 자체가 필연적이 아닌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필연적이어야 됩니다. 왜?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의미를 부여하는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즉 이 말이 없으면 의미를 부여할 수 도, 존재의 의의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말이 없었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이 존재하듯이 말 이전에 이미 존재라는 것은 있는 것입니다. 존재가 먼저이고 말은 그다음입니다. 존재가 있고 나서 이를 이해하고 해석하려는데 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본은 "있고"나서 입니다.


물론 존재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수단은 여러 행태가 존재합니다. 언어는 당연하고 미술이 있고 조각, 음악, 무용 심지어 건축도 있습니다. 이들 표현은 구성원이 공동으로 인식하는 표현의 공동 틀 속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같이 공감 헤야 존재에 대한 용어 표현으로써 효용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근래 들어 미술과 조각 등은 개인의 언어로 한정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공동의 이해를 표현하는 것이 아닌 '자기 세계를 표현하는 언어'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림을 보고 작가의 설명을 들어야 '아 저 그림이 저런 의미가 있구나'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개인화에 대한 반영이지 않나 싶습니다.

나의 존재가 있고 나서 모든 것이 존재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없다고 해서 모든 존재도 없는 것이냐? 그것은 또한 아닙니다. 내가 없어도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습니다. 결국 세상은 기본적으로 존재하는데 나라는 존재가 하나 더 존재의 의미를 더하는 것이지만 세상의 존재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눈높이를 높이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왜 둥근지 알게 되고 그러면 우주의 원리에 대해 들여다보게 되고 이 물질세계에서의 존재라는 것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됩니다. 세상은 그렇게 존재할 테니까요. 상쾌한 바람이 마음도 가벼워지고 농무로 태양이 회색으로 보이고 지인들의 일상에 궁금해할 테니까요. 세상을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그러한 일상인 것입니다.


한치도 지금 이 순간을 떠나서는 존재의 의미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얇게 젖은 셔츠를 내려다보며 살아있어 가능한 일임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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