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남들이 지랄 맞다고 하나요 아니면 그나마 봐줄 만한데라고 하나요. 그도 아니면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나요?
성격(性格 ; personality)은 "각 개인이 지닌 특유한 성질이나 품성으로, 생애를 통틀어 일정하면서도 변동이 가능하고 어느 정도는 유전의 영향을 받고 어느 정도는 학습되는 독특한 특성"이라고 정의됩니다. 이 성격은 꼭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포유류에서 관찰되는 현상입니다. 반려견만 봐도 온순한 놈, 성질 있는 놈 등등 구분 지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눈으로 규정하는 오류일 테지만 경험론으로 들이대면 그 또한 맞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성격을 구분하는 선을 긋고 경계를 세우는 것은 바로 상대방을 파악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빨리 알아챌수록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나누고 MBTI나 애니어그램으로 세분화해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럴 것이다'라고 정해놓고 규정지어 놓으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단정 지어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분류를 해놓고 경험론을 들이대면 그럴듯합니다. 과학적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전에 대략 때려잡는 데는 아주 유용한 도구로 활용됩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이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맞춰나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입니다. 생존을 대하는 자세를 성격이라고 할 수 있고 범주화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조차도 경험적 선입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성격 테스트 방법론이 등장하고 인류사 전체적으로 주술과 종교, 미신과 사주팔자 등이 등장합니다. 보편적 상황에 따라 일반적으로 흐르는 유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이자 의미부여입니다. 보편적이기에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리뭉실하기에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 부여하는지에 따라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그것조차 확률이고 불확정성 현상이라고 들이대면 그 또한 맞습니다. 어떻게 믿느냐에 대한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MBTI 분류 유형중 ISTJ입니다. 더러운 성격 분류 중 4위에 해당한다는군요. 그래도 제 앞에 더 성격 나쁜 유형이 3개나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됩니다. 제 앞에 있는 유형은 ESTJ ENTJ, INTJ랍니다. 공통점은 모두 사고형 T(Thinking)와 판단형 J(Judging)에 속한 군상들입니다. 그렇다더라라는 것이니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저는 안 믿습니다. 사실 MBTI에서 쓰는 영어 단어조합이 뭔 뜻인지도 모릅니다. 신경 써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말 그대로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가 봅니다.
아무튼 이런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오히려 더러운 꼴, 비합리적인 꼴, 비상식적인 꼴을 못 보긴 합니다. 틀린 것은 지적질해야 하고 더러우면 치워야 합니다. 한번 아닌 놈은 영원히 아닌 놈으로 봅니다. 어쩌다 마주치면 피해 갑니다. 먼저 연락할 일 없습니다. 아예 전화번호 지워버립니다. 먹을 게 없으면 굶지 구걸하지 못합니다. 성격 지랄 맞긴 하지요.
그러다 문득,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 보며 사는 것도 부족한 시간이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는 것도 바쁜데 굳이 성격이니 성향도 안 맞는 사람들과 상종할 필요가 없긴 합니다만, 그 사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받아들이면 뭐 인정 못할 정도는 아닌 걸 알게 됩니다.
뭐 계엄을 선포하는 황당무계한 일을 벌이는 쪼다 수준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황당무계의 끝판왕이 어떻게 변형되고 발전하는지 볼 수 있기 때문이고 "저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를 알려주는 발상의 전환 신호등이기 때문입니다. 헬스클럽에서 땀에 젖은 수건을 탈의실 바닥에 그냥 놓고 가는 인간들도 "그래 제 집에서도 저러겠지"라고 이해하면 그냥 봐주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해의 폭이 넓어질수록 사는 게 편해집니다.
타인의 언행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타인의 행동이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무시하기로 합니다. 너무 소극적이고 회피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보일지 모르나 헌 발 떨어져 지켜보는 여유는 삶을 훨씬 더 단순하고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타고나는 기질이 존재하고, 반복된 행동의 습관이 그것을 더 단단히 고착시킵니다. 하지만 상황을 인식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을 지키는 태도는 충분히 훈련 가능합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왜 저럴까’를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는 곧 여유이고, 여유는 곧 평화입니다.
살다 보면 정말 별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됩니다. 나처럼 지랄 맞은 성격도 있고,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그 다양성을 견디는 과정입니다. 이해와 포용이라는 말이 꼭 대단하고 거창한 도덕적 고행을 뜻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냥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고 중얼거리며 스쳐 보내는 것, 그 정도면 족합니다.
넓게 보면 산다는 것이 별거 아닙니다.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면 그럭저럭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 나에겐 한번 아닌 놈은 영원히 아닌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꼴 보기 싫은 걸 어쩝니까? 성격 고치고 순화하기 정말 어렵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