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허상에 대한 직시

by Lohengrin

삶의 순환을 규정하는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이 과정은 생명체라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숙명적인 순환이다. 우리는 태어남을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쇠락하는 노화(老)의 현상을 피할 수 없다. 에너지를 소비하여 존재를 유지하는 생명활동의 필연적인 부산물인 병듦(病)조차도 결국 쉬어가라는 자연의 신호이며, 마침내 모든 에너지를 반납하고 원 상태로 돌아가는 죽음(死) 역시 순환의 완성일뿐이다.


이처럼 지극히 자연적이고 객관적인 생명 현상에 유일하게 감정이라는 주관적 요소를 개입시키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과정 속에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투영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비가 교차하는 심경의 변화 속에서 고뇌한다. 늙는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병든다는 현상에 공포를 느끼며, 다가오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생명현상 자체를 감정으로 치환하여 고민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숙제인 셈이다.


이 어쩔 수 없는 네 가지 생명현상 중, 우리가 유일하게 그 속도를 늦추고 삶의 질을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노(老)와 병(病)이다. 네 가지 중 두 가지를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의 섭리 속에서 허락된 '천기누설'과 같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죽음이라는 현상 자체를 늦추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첨단 의료 기술은 인류의 평균 수명을 극적으로 연장시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잔 칼망 할머니가 1997년에 세운 122세라는 최장수 기록은 여전히 호모 사피엔스의 최대 수명이라는 벽으로 남아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벽을 넘어서는 인간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명의 유전적 한계와 외부 환경의 통제가 아직 미지의 영역임을 시사한다.

결국,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장수의 목표는 '최대 수명 갱신'이 아니라 '건강 수명의 연장'에 맞춰진다. 누구나 100세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이는 유전적으로 타고난 소수에게만 허락된 영역일 수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저 100세 근방까지 병들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하며, 두 다리로 걸어 다니다가 삶을 마감하기를 소망한다.


이 소망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구구팔팔 이삼사'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 삼일 앓고 떠나고자 하는 염원. 이는 생(生)과 사(死)의 중간에 놓인 노(老)와 병(病)의 기간을 최소화하고,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와병(臥病) 기간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가 담겨있다.


노(老)와 병(病)은 별개가 아니다. 늙으면 신체 기능이 저하되어 병에 취약해지고, 병이 들면 회복 과정에서 급격한 노화가 뒤따른다. 이 둘은 생과 사의 중간 여정에서 상호작용하며 우리의 삶의 질을 갉아먹는 하나의 현상이다. 문제는 늙고 병드는 속도, 즉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와병 기간을 얼마나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두 다리로 걷지 못하고 휠체어나 침대 생활을 해야 하는 기간을 죽음을 기준으로 역순 계산했을 때, 그 시간을 10년으로 할지, 5년으로 할지, 아니면 '구구팔팔 이삼사'가 염원하는 대로 단 며칠로 단축할지에 대한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선택은 자명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구구팔팔 이삼사'의 삶에 손을 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화와 질병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을 반드시, 그리고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게을리할 수 없는 숙제이며,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생물학적 명령이다.


노와 병을 관리하고 와병 기간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검증된 방법은 바로 운동과 공부를 동시에 병행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작동하는 순간, 우리의 노력은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체중을 줄이겠다고 죽어라 운동하고 나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폭식하는 행위가 체중 감소는커녕 고지혈, 당뇨 수치만 높이는 역효과를 초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운동(運動)은 신체의 엔진을 관리한다. 운동은 두 다리로 걷는 능력, 즉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근육량을 유지하고, 골밀도를 강화하며, 심폐 지구력을 높이는 행위는 노화에 따른 신체 기능 저하를 직접적으로 방어한다. 이는 움직임으로써 늙음과 병듦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활동성 유지, 낙상 예방, 그리고 만성 질환 관리의 핵심 열쇠가 바로 운동에 있다.


공부(工夫)는 브레인의 내비게이션을 관리한다. 여기서의 공부는 단순히 지식 습득을 넘어, 뇌신경을 활발히 유지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지적 활동을 의미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거나, 낯선 디지털 도구를 익히거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된다. 특히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GPT와 같은 최신 AI 도구를 익히고 활용하는 '디지털 공부'는 뇌를 가장 효과적으로 자극하고 인지 기능을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끊임없이 뇌를 사용해야만 치매와 같은 인지 질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강한 100세를 영위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기둥, 즉 신체의 건강(운동)과 뇌의 건강(공부)은 반드시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아무리 몸이 팔팔해도 정신이 맑지 못하면 독립적인 삶을 지속할 수 없으며, 아무리 정신이 맑아도 몸이 침대에 묶여 있다면 삶의 질은 무너진다.


생물학의 세계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녹록하지 않으며, 평등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오히려 생명이라는 현상은 가장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영역이며, 내가 노력한 만큼만 결과로 돌아오는 냉철한 현실이다.


"나도 100세 근방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착각을 버려야 한다. 100세 시대는 누구나 살 수는 있으나,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 삶을 누릴 수 있는 영역은 오직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된 영역이다. 오랜 운동과 공부의 노력이 돌발적인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헛수고가 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경험과 통계로 증명되었다.


너무도 단순한 명제에 심각하게 접근하거나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다. 거듭 강조하지만, 핵심은 무조건 움직여야 한다는 명료한 명령에 있다. 안 움직인다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써 늙음과 병듦의 속도로부터 스스로 멀어져야 한다.


결국, 생로병사의 순환은 숙명이지만, 노와 병의 기간을 얼마나 짧고 건강하게 관리할 것인가는 철저히 우리의 능동적 선택에 달려있다. 지금 당장 두 발로 걸어 나가 운동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머리를 쓰는 것, 이것이 바로 '구구팔팔 이삼사'라는 간절한 소망을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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