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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진다'는 촉각의 진실

by Lohengrin

인간의 신체를 덮고 있는 피부세포 중, 털이 나지 않은 곳이 네 군데 있다. 바로 손바닥, 발바닥, 입술, 그리고 생식기다.


이 네 부위의 공통점은 촉각이 예민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외부 세계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섬세한 감각을 느끼고 반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피부를 털이 없는 ‘무모피부(glabrous skin)’라 부른다. 털이 없는 피부층에는 피지샘이 없고 오직 땀샘만 존재한다. 이 부위의 땀샘은 에크린(Eccrine) 땀샘으로, 땀을 흘려도 수분만 배출될 뿐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반면 털이 있는 피부에는 피지샘과 함께 아포크린(Apocrine) 땀샘이 존재해 땀과 피지가 섞이며 특유의 냄새를 만든다. 즉, 털이 없는 무모피부는 오직 감각을 위해 정제된 피부다.


얼핏 보면 얼굴에도 털이 없는 것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잔털이 촘촘히 나 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이미 털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털의 감소는 단순한 외형 변화가 아니라, 감각기관으로서의 ‘피부’가 더 정교해졌다는 증거다.


만약 손바닥이나 입술, 성기, 발바닥에 털이 있었다면 인간의 진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손바닥에 털이 있다면 도구를 정교하게 다루기 어려웠을 것이고, 입술이나 성기에 털이 있다면 감정의 표현과 사랑의 소통은 훨씬 둔탁해졌을 것이다.


촉각의 민감함을 확보하기 위해 털을 없앤 것은, 생존을 위한 자연의 위대한 선택이었다. 인간의 조상인 영장류는 나무를 타고, 먹이를 다루며 진화를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손과 발의 감각은 생존의 핵심 무기가 되었다. 촉각은 ‘만지는 감각’이다. 피부를 통해 대상을 느끼고, 그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털로 덮여 있다면 외부 자극을 직접 느끼기 어렵지만, 맨살의 피부는 그 차이를 즉각적으로 알아챈다.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손의 촉각을 정교하게 활용했다는 점이다. 손의 감각이 발달했기에 도구를 만들고, 불을 다루며, 환경을 바꿀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만지는 행위’는 단순한 신체 반응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 즉,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손을 쓰기 때문에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건물, 도로, 옷, 식기, 칫솔, 심지어 스마트폰까지 모든 인공물은 손의 감각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시각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촉각의 존재를 종종 잊고 살지만, 인류 문명의 토대는 손끝에서 시작되었다.


손바닥과 함께 입술 또한 인간 감각의 정점이다. 입술은 촉각의 밀도가 가장 높은 부위 중 하나다. 연인들의 입맞춤이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입술의 촉감은 감정과 욕망, 애정과 교감이 만나는 지점이다. 입맞춤은 언어보다 먼저 존재한 ‘촉각의 대화’다.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빠는 행위 또한 같은 원리다. 입술은 가슴과 밀착해 진공을 만들어내며, 생명의 에너지를 빨아들인다. 성인이 되어서는 입술이 공기의 흐름을 조절해 단어를 만들고, 감정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능의 바탕에는 ‘촉감의 정밀함’이라는 원초적 능력이 깔려 있다.


이처럼 털이 없는 네 부위는 단순히 신체 일부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 감각기관이다. 이 부위를 통해 우리는 세계를 만지고, 걸으며, 말하고, 사랑한다. 만약 이 네 곳의 촉각이 둔해진다면 인간의 문명과 감정 구조 자체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모피부를 잘 관리하고, 그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답게 산다는 의미와도 연결된다. 손바닥의 촉각을 통해 도구를 다루는 이는 장인이 되고, 발바닥의 감각을 통해 길을 잃지 않는 이는 여행자가 되며, 입술의 감각을 통해 말을 다스리는 이는 현자가 된다. 결국 인간의 품격은 손과 발, 입술을 얼마나 섬세하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 사회의 모든 관계 또한 촉각에서 출발한다. 만나서 악수하고, 포옹하고, 입맞춤을 나누는 모든 행위가 그렇다. 이것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라, 촉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뢰의 표현이자 교감의 언어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손으로 잡을 때 더 확실히 느끼고, 말로 듣는 것보다 포옹할 때 더 깊이 안심한다. 그래서 촉각은 감각 중에서도 가장 ‘진실한 감각’이라 불린다. 손을 잡으면 체온을 느낄 수 있고, 품에 안으면 상대의 떨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그 감각을 통해 우리는 상대가 진심인지, 따뜻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촉각은 생명이 생명을 인식하는 최초의 방식이자, 마지막까지 남는 감각이다.


시각과 청각이 점점 디지털화되는 시대, 우리는 점점 ‘만지는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 휴대폰 화면으로 세상을 보고, 이어폰으로 세상을 듣는 동안, 손끝의 세계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성은 여전히 촉각 속에 있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고, 포옹하는 단 한 번의 순간에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온기를 되찾는다. 촉각은 인간이 세상과 맺는 가장 오래된 대화이자, 생명이 생명임을 깨닫게 하는 감각의 언어다. 우리가 서로를 만지고 느끼는 한, 인간의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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