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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ul 31. 2020

사실과 진실

7월의 마지막 날에 섰습니다. 날짜에 대한 의미 부여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주의입니다만 아침마다 글을 쓰는 소재의 시작으로 날짜가 주는 유혹은 뿌리칠 수 없습니다. 쉽게 서두를 가져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날씨와 기온을 끄집어내어 글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큰 고민 없이도 날짜가 주는 시작과 끝의 의미만 잡아내도 줄줄이 이야깃거리들을 엮어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일상은 날짜의 구속을 받아 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매일 아침 무언가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혼자 쓸 때 사용하던 언어와 누군가 읽는 사람이 있을 때 사용하는 글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주제로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는 작은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글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좀 더 공감하는 내용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면 글에 힘이 들어갑니다. 자유로운 흐름이 아니라 어딘가 책임과 의무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벽이 등장합니다. 글이란 참 묘한 힘을 갖습니다.


언어의 상징을 글자라는 공통기호를 통하여 나타냅니다. 행동과 소리를 문자라는 기호를 정해놓고  "그것은 이렇게 표현한다"라는 공유를 통해 사회화합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놀라운 능력이자 진화입니다. 언어는 물질적 실체가 아니기에 무한 증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에 통용되는 법칙이자 질서가 됩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읽을 때 사실이 기술된 단순 기사보다는 의견이 가미된 사설이나 논단 등의 글을 더 정독한다고 합니다. 타인의 의견을 읽고 자기의 의견을 가미할 수 있기에 그렇다고 합니다. 사실을 기술한 글에는 자기의 의견을 말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 자체를 표현해 놓은 것이기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의견을 담고 있는 글에는 자기의 의견도 함께 더할 수 있습니다. 그 의견 정말 좋다 아니다. 표현 잘했는데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등등 말입니다. 의견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각양각색으로 재표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의 심리를 제대로 꿰뚫은 관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영상을 대하는 자세는 조금 달라집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한 가짜 뉴스 동영상에 실버세대가 빠져든다는 뉴스들이 많이 들립니다. 소리로만 들리면 그것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쉽게 구분할 수 도 있고 개인의 판단을 가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면, 지금 움직이는 동영상과 자막을 현장 검증하듯 보고 있기에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지금 보고 있으니 거짓 일리 없습니다" 바로 "영상의 착각"입니다. 조작되어 연출된 장면일지라도 지금 내가 보고 있으니 틀림없는 사실일 거라 확신합니다. TV를 바보상자라 일컫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서는 개인적인 판단이나 의견을 끼워넣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동영상은 계속 흘러가고 있기에 계속 지켜봐야 하고 그러면 계속 움직이고 있기에 현장의 진실을 목도하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사실과 진실은 거짓과 포장에 덮이고 맙니다. 사실과 진실은 보고 자해야 보이게 됩니다. 진흙 속의 진주를 골라내듯 사실과 진실을 골라내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사실과 진실에 대해서는 그 어떤 반론도 펼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그 자체가 바로 Fact이기 때문입니다.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 외부를 보는 시각의 핵심이 있습니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실과 진실은 왜곡시킨다고 흐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흐트러놓으면 잠시 흐려져 보일 뿐이지 다시 흙탕물 맑아지듯이 진실은 표면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인간 세상사에 있어 항상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사실과 진실을 놓고 해석하고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리 표현이 됩니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진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훈련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의 흔적을 되짚어봐도 진실을 바라보는 교육이나 훈련을 접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저 개인의 일로 치부되었기에 천차만별의 개인 의견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전체주의적 사고 관념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의견을 피력할 때도 변치 않는 사실과 진실을 바라보고 표현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체계적으로 표현하고 말한다는 것은 공동사회의 커다란 힘입니다. 우리는 큰 소리로 말하고 주장하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겠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매일매일의 삶 그 자체인데 말입니다. 이 사실과 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한 방편이 자연과학에 대한 접근의 시작입니다. 자연을 수식으로 이해하고 현상을 발견해내고 범주화하고 패턴화 하여 법칙과 원리를 알아낸 선인들의 앞서간 지식을 뒤쫓아 봅니다.


프리드만 방정식을 통해 우주의 시간을 계산해 내고 우주의 크기를 수식으로 설명합니다. 볼츠만의 엔트로피를 통해 우주만물의 생성 원리를 숫자로 봅니다. 관념으로 점철된 사고만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상태 에너지를 수식으로 풀어 들여다봅니다. 꽃이 피고 비가 내리고 후덥지근한 기온이 왜 생기고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사실과 진실을, 관념의 이해가 아닌 숫자로 써놓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무한대로 확장됩니다. "무수히 많지만 무한대는 아닌" 그런 확률이 삶의 현현입니다. 어려운 듯 하지만 어렴풋이 눈치챈다는 것, 그게 바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사실과 진실은 그런 것입니다. 오늘이 7월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말입니다. 한 달 정리는 잘하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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