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동불거(變動不居 :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전국 대학교수들의 설문조사를 통해, '올해의 사자성어'가 선정, 발표됐다. 25년째다. 올해 1위로 선정된 사자성어가 '변동불거'다. '주역' 계사전 하편에 나오는 말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라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양일모 교수는 "지난 연말 계엄령이 선포됐고 올봄에도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했다. 결국 정권이 교체됐고 계엄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으로 여야는 내내 치열하게 대결했다. 세상을 농락하던 고위급 인사들이 어느덧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 초라한 국내의 정치판과는 달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세계인의 감성을 흔들었다. 해외에서 갑자기 날아든 K-컬처의 위력은 한국 정치의 감점을 만회하고도 남았다.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의 또 한 면을 채운 을사년이 무심하게 저물어 가고 있다"라고 했다.
한자의 사자성어가 품고 있는 매력이 있다. 네 글자에 세상의 모든 함의가 담겨있다. 꼭 네 글자가 아니어도 되겠다. 칠언절구도 있다. 그럼에도 사자성어는 단호함이 있다. 명명백백하다. 간결한 리듬이다. 폐부를 찌르듯 핵심을 담고 있다. 절제되는 듯 하지만 들여다보면 자연의 운행이 들어가 있다. 햇빛, 바람, 물, 불의 조화와 관계로 만들어지는 형상들이 들어 있다.
25년 동안 선정했지만 최근 5년 치를 돌아보자. 작년에 선정된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라는 뜻이다. 2023년에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라는 뜻이다. 2022년에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됐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2021년에 선정된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다.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라는 의미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권의 추한 모습이 사자성어에 주로 담겼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선정된 사자성어를 보면 긍정적인 단어가 선정된 해는 한 번도 없다. 교수들은 세상을 비관적이고 어둡게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교수는 우리 사회의 지성을 대표하는 보루임은 자명하다. 그들이 우리 사회를 어둡게 본다면 우리 사회의 민낯이 그렇다고 들이대도 크게 오류가 없을 것이다.
권력에 빌붙은 폴리페서들도 여럿 있고, 알량한 교수직을 기득권 엘리트주의로 호도하는 인간들도 분명 그 사이에 끼어있지만, 올해의 사자성어처럼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하는 것'이 세상이다.
흐르는 세상은 방향성이 없다. 그때 그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강하면 잠시 멈추었다 식기를 기다리고, 웅덩이가 있으면 고였다가, 차면 넘치는 것이다. 상선약수의 기세다. 맞설 수도 없고 맞서지도 않는다. 세상 삶의 이치다. '받아들임'이다.
교수 사회가 이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모양이다. 그렇게 흘러가고 변해감을 받아들인다. 변동불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