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6시 반, 몇몇 고등학교 동창이 모인 카톡방에 에디오피아 게이샤 커피를 끓이고 있는 모카포트 모습과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 책이 담긴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여행 중에 마시는 모닝커피가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며 그 향으로 거실을 채워 잠을 깨우고 한 손에 커피잔을, 또 한 손엔 책을 든 친구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에스프레소 한 모금이 뉴런을 깨워 책 속의 문장 하나하나에 화살처럼 시선이 꽂힐 것이다.
재스민, 베르가못, 오렌지, 장미향이 난다는 게이샤 커피 향의 강렬함과 열대과일, 꿀, 초콜릿, 홍차 같은 섬세한 단맛과 깨끗한 산미가 조화를 이루고 부드럽고 가벼운 바디감을 가지고 있어 깔끔한 뒷맛이 조화를 이뤄 혀의 미각을 깨우고, 커피잔에 전해오는 따뜻함으로 촉각의 예민함도 부추기며, 잔에는 검은 듯 짙은 갈색의 모습으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의 깊이가 담겨있을 것이다. 이른 아침에 오감을 깨우기에 이만한 만남이 없을 듯하다.
새벽의 평온이다.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진한 커피 향이 코 끝에 전해진다.
사연은 항상 기억의 저편을 건너온다. 게이샤 커피를 마셨던 과거의 기억이다.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스타벅스에서 파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는 커피인 줄 착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스벅 커피가 좋은지, 투썸 커피가 좋은지, 폴바셋 커피가 좋은지, 블루버틀 커피가 좋은지, 마셔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원두를 오래 볶아 산미를 높인 정도의 차이만 구분할 뿐이어서 그놈이 그놈인 줄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샤 커피에 대한 추억이 떠오르는 데는 20년도 넘은 기억 때문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커피 맛을 알 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회사 선배님 댁에 우르르 몰려 갔던 때가 있었다. 예전에는 아파트에 입주하거나 아이들 돌잔치를 할 때는 회사 동료들을 집으로 부르는 '집들이'라는 것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용어가 되어버렸을 터다. 해외 주재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집 정리가 끝났다고 해서 부서원들을 불러 회식 겸 집들이를 했다. 그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사모님께서 다과와 함께 내오신 커피가 '게이샤'였다.
그때는 게이샤 커피가 뭔지 알지도 못했다. 프리미엄 커피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다. 그 시절은 스타벅스 같은 카페도 없을 시절이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는 '맥스웰'이 최고인 줄 알고, 다방에서 마담이 넣어주는 설탕 세 스푼, 크림 세 스푼짜리 커피가 제일 맛있다고 아는 정도였다. 그렇게 귀한 게이샤 커피라는 것을 처음 마셔봤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게이샤 커피가 흔하게 마실 수 있는 커피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도 게이샤 커피 생두는 100g에 수만 원을 호가하며 카페에서 한 잔에 3만 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게이샤 커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게이샤와는 전혀 관계없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의 게샤(Gesha) 숲에서 유래했다. 현재는 에티오피아외에도 파나마, 콜롬비아 등 남미의 여러 국가에서 재배되고 있다. 사실 세계 3대 커피 브랜드는 하와이안 코나, 예멘 모카 마타리,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꼽는다. 이들 커피들은 원두의 맛뿐만 아니라 독특한 재배 환경과 제한된 생산량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싸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풍미와 맛이 일품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는 수준이라, 프리미엄 커피를 가끔 마셔도 나는 잘 모르겠다. 나름 맛을 구분하는 데는 남들 못지않은 감별사이기도 한데 유독 커피와 와인 맛은 구별하지 못한다. 진정한 감별사가 아닌 모양이다. 사실 감별사 행세를 하려면 중독이 되어야 가능하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있으면 마시는 정도지, 찾아서 마시지는 않는다.
그래도 오늘 아침처럼 추억의 저편을 건너오는 기억이 코끝까지 전해오면 주방 찬장을 열어 구석에 처박혀 있을 커피들을 찾아본다. 곰팡이 쓸었을까? 코끝을 벌름거려 본다. 오늘 아침은 커피 향으로 집안을 채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