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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송년모임

by Lohengrin

어떻게, 2025년의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조차 벌써 1/3이 지나고 있는데 송년모임들은 잘 치르고 있나요? 예전처럼 고주망태가 되는 송년모임은 없어진듯하여 다행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요? 이런 ㅠㅠ 그렇다면 조심조심 남은 연말을 잘 지나셔야 할 듯합니다. 괜히 눈 내린 빙판길에 자빠지기라도 해서 골절상이라도 입게 되면 낭패일 테니까요.


저도 아직 송년 모임이 다음 주까지 다섯 개가 남아 있긴 한데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의 모임들이 아니어서 부담이 없긴 합니다.


모임, 파티에서 술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결정적 수단이 되긴 하지만 왜 그렇게 술들을 많이 마실까요? 분위기 업 정도의 기능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아시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시는 기묘한 현상을 가끔 목도하게 됩니다. 지금은 술 취한 사람 보기가 희귀한 일이 되어버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제 주변만 그럴까요?

술 마시는 행위도 평소의 습관이겠지요. 그래서 술은 어르신 앞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술 마실 때는 언행을 조심하라는 경고일 겁니다. 뒤돌아보면 예전에는 왜 그렇게 술들을 많이 마셨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강제로 '파도타기'를 해서 술을 마시게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적 회식문화의 전형이었을 겁니다. 으쌰 으쌰하는데 있어 분위기 못 맞추면 안 되는 그 무언가의 압박감이 함께 작동하여 마시기 곤혹스러운 술까지 억지로 마셨던 송년회 경험은 다들 한두 번 있으실 겁니다.


그러던 송년모임들이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음주 문화의 정점을 찍던 기업 회식이 완전히 바뀐 듯합니다. 요즘은 아예 '회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진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한 해를 정리하고 덕담이라도 주고받으려면, 점심때 같이 식사하는 정도로 간략히 지나가기도 하죠. 이런 자리에서는 건배용으로 간단히 맥주 한두 잔 정도가 제격인지라 얼굴 벌게질 정도의 음주는 사라졌습니다. 바람직한 회식문화로의 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여러 송년모임 때마다 기타를 가지고 갑니다.

모든 송년모임에 들고 가는 것은 아니고 모임 장소에 따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인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도 분위기 괜찮은 모임인지를 사전에 살피고 갑니다. 괜히 생뚱맞을 수도 있는 자리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부르면 어떤 상황에서도 환영받고 하겠지만, 그저 쉬운 기타 코드에 맞춰 웅얼대는 아마추어 수준인지라 조심스러움이 먼저입니다. 그래도 뭐 못 들어줄 수준은 아닌지라 약간의 창피를 무릅쓰고 상황 봐서 기타를 가지고 갑니다.


기타 치고 노래하면 분위기 전환하는 데는 제격입니다. 특히나 술 마시는 것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있어서는 기타 치며 노래하는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는 '시간 벌기'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약간의 퍼포먼스와 약간의 술로 보내고 있는 2025년 12월입니다. 사실 송년 모임은 핑계일 겁니다. 만나서 우애를 나눌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에 의미를 부여하여 만나는 명분을 주기에 좋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는데 다 '때'가 있습니다. 이때가 아니면 핑계 댈 수 도 없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송년회가 그렇고 신년회가 그렇고 모든 기념일이 그렇습니다.


삶의 여정 중에서 대나무 마디처럼 중간중간 정리하고 되돌아볼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겠죠. 그 마디들을 송년회다 신년회다 이름 붙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행사들은 중요한 점검 포인트가 됩니다. 화룡점정처럼 방점을 찍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임에서 마시는 술 한 잔은 건배를 위한 요식행위의 도구일 뿐일 테지만 음주가무가 빠진 모임은 거품 빠진 맥주의 맛일 수 있으니 그 조화의 경계는 참으로 오묘하게 작동합니다. 내가 참여하고 내가 관여하고 내가 마시는 정도를 조율하기 나름입니다. 분위기 핑계 댈 것이 아니고 나의 의지에 따라, 나의 의지에 맞게 행동하면 됩니다. 내가 술의 주체가 되면 술이 술을 부를 일이 없을 겁니다. 2025년 송년모임도 하나씩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다는 증표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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