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거대한 수레바퀴를 굴려온 주역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많이 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고, 미켈란젤로가 그랬으며, 조선의 정약용이 그러했다. 그들은 단편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백과사전식의 방대한 지식을 통합하고 융합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혔다. 산업혁명 이후 유럽을 풍미했던 수많은 사상가들 역시 철학을 기저에 두고 정치학, 경제학, 심지어 해부학과 지리학까지 섭렵한,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만능 백과사전’이었다. 역사 속에서 ‘많이 안다’는 것은 단순한 암기력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경쟁력이자 차별화된 무기였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의력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인간의 지식 습득 능력과 그 생물학적 그릇인 뇌는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인류학적 보고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의 뇌 용적은 수만 년 전보다 오히려 줄어들었다. 혹자는 불의 사용으로 인한 영양 흡수율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기도 하지만, 더 설득력 있는 기점은 바로 ‘문자의 출현’이다. 인간이 바위와 종이에 지식을 기록하고 외부에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뇌는 변화를 선택했다.
약 1,400cc라는 한정된 두개골 공간 안에서,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보를 모두 저장하는 대신 효율성을 택했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했지만, 외부에 기억을 위탁할 수 있는 ‘외부 기억 장치’들이 발달하자 굳이 뇌 용적을 늘려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뇌는 세부적인 정보(Data) 자체보다는 그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그 정보의 핵심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고, 그 키워드들을 엮어 맥락을 만들어내는 ‘편집’과 ‘작화(作話)’ 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는 딱딱한 두개골에 갇혀 주름을 만들어 표면적을 넓히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뇌 나름의 생존을 위한 혁신적인 진화 전략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외부 기억 장치’의 정점인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했다. 과거의 검색 엔진이 수많은 정보의 파편을 나열해 주고 인간에게 선택을 맡겼다면, 생성형 AI는 그 단계를 뛰어넘어 ‘정답과 해답’을 직접 제시한다.
중간 과정의 지난한 탐색과 판단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주는 효율성의 극치다. 복잡하게 지식을 찾고 종합하느라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나보다 더 방대한 데이터를 가진 도구가 순식간에 정보를 통합해 결과물을 내놓는다. 바야흐로 인간이 더 이상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궁극의 편의성이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치명적인 역설이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콘텐츠를 학습한 이 전지전능해 보이는 AI라는 도구는, 인간이 ‘질문을 던져야만’ 비로소 답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묻지 않으면 답하지 않는다. 이것이 AI의 본질이자 한계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누가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는가’로 판가름 난다.
박사급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AI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AI의 답변을 검증하고 재질문하며 100%, 아니 300% 이상의 효율을 끌어낸다. 반면,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AI를 사용하면 고작 10%의 효율도 누리기 어렵다. 겉핥기식 질문에는 겉핥기식 답변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핵심을 찌르는 고차원적인 질문, 통찰력 있는 ‘프롬프트’는 우연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자의 머릿속에 이미 구축된 탄탄한 지식의 체계, 즉 ‘내면의 결정적 지식’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공부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지식을 쌓아야 한다. 많은 현대인이 스마트폰과 요약본에 의존하며 지식을 ‘소비’하는 데 그친다. 깊이도 없고 넓이도 없는, 그저 시험 정답을 맞히기에 급급했던 저급한 학습 방법에 머물러 있다.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이미 AI가 인간을 초월했다. 이제 인간이 설 자리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두세 개의 질문을 던지고 밑천이 드러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심층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AI는 인간의 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의 깊이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 안의 지식이 얕으면 AI가 보여주는 세상도 얕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AI가 똑똑해질수록 더 많이 읽고, 더 깊이 사고하고, 더 집요하게 공부해야 한다.
뇌의 용적이 줄어드는 진화의 흐름 속에서도, 시냅스의 연결을 더 촘촘히 하여 지혜의 밀도를 높여야 한다.
결국 AI 시대를 살아남고 버텨낼 수 있는 존재는, AI에 의존하여 생각을 멈춘 자가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간’ 일 것이다. 그것이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이자, 우리가 지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