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여행을 가본 지가 언제였나요?

by Lohengrin

버스로 여행을 떠난 적이 언제셨나요?


여행을 떠날 때 교통수단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것은 단연코 자가용이겠지만 조금 멀리 떠난다고 할 때는 기차가 단연코 우위일 겁니다. 바다 건너가는 해외여행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여행에서 기차를 이용하는 횟수가 압도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가고자 하는 곳이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쉽게 갈 수 있는지에 대한 접근성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갔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의외로 많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역시 버스로 움직이는 동안 자유롭지 못한 환경 때문인 듯합니다.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불편함이 한 몫했겠지요.


저만 해도 2시간 이상 가는 여행에서 버스를 이용했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긴 했습니다. 아! 지난 5월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포르투를 갈 때 플릭스 버스를 3시간 정도 탔던 적이 있습니다. 근래의 기억으로는 그때가 거의 최근이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금요일, 1박 2일 일정으로 대전으로 내려가는데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고등학교 동창 중에 친한 녀석끼리 모이는 모임을 하는데 송년회를 대전에서 했습니다. 매번 서울에서 모이는데 대전에 사는 친구 녀석이 빠지지 않고 서울에 올라옵니다. 멤버들이 매번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1년에 한 번씩은 대전으로 내려가 모임을 하자는데 의견일치를 보고 지난 주말에 내려갔던 것입니다.


강남에 사는 친구들은 수서에서 SRT를 타고 내려가고 강북에 사는 친구들은 접근성이 좋은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차 한 대로 같이 내려갈 수도 있겠지만 술 도 한 잔 하고 해야 하는 자리인지라 모두 대중교통을 이용해 편안하게 다녀오자고 의기투합했습니다.


그렇게 동서울터미널에서 친구를 만나 3시 50분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예정 소요시간이 2시간입니다. 6시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할 듯해서 예매한 시간인데 이런 제길, 금요일 오후였음을 간과했습니다. 대전에 저녁 7시가 돼서야 도착했습니다. 차가 막혀 1시간 정도 더 소요됐습니다. 약속장소에 가니 이미 먼저 내려간 친구들은 술잔이 한순배 돌았습니다.


막힌 도로를 천천히 가는 버스 안에서, "늦은 만큼 술을 덜 마실 수 있겠구나"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해봅니다.


하지만 도로에 교통량이 많아 천천히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좋은 여행 경험이었습니다. 요즘 고속버스는 우등버스가 많습니다. 좌석배열도 3열에, 거의 비행기 비즈니스 수준의 좌석입니다. 안락함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타보는 고속버스인지라 약간의 설렘도 있습니다.

버스가 25석인데 만석입니다. 대전 정도까지는 그래도 고속버스를 많이 이용하나 봅니다. 버스가 출발했는데 버스 안이 너무 조용합니다. 옆 자리에 앉은 친구와 시끄러울까 봐 대화를 많이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친구는 백팩에서 태블릿을 꺼내 네플릭스 영화를 한 편 보겠다고 합니다. 저는 창가 좌석인지라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켜고 창밖을 보며 가기로 합니다. 이런 호사가 또 없습니다. 오랜만에 느끼는 창밖의 풍경이고 여유입니다. 운전하면서 가면 도저히 느끼고 감상할 수 없는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에 이슬이 맺혀 가끔씩 닦아 줍니다. 선명했던 풍경이 이슬로 뿌옇게 변하는 모습조차 경이롭습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5시가 넘어서면서 산마루 위로 황혼빛이 물들어 옵니다. 산등성이 경계선을 기준으로 하늘이 더 밝고 산마루 아래쪽이 어두운 실루엣으로 비칩니다. 다채로운 색깔이 단조로운 흑백의 세계로 바뀝니다. 버스의 속도가 줄어들수록 흑백의 명암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그러다 어는 순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건너편 도시의 인공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빛납니다. 흑백의 세계에서 다시 총천연색의 세계로 서서히 전환됩니다.


이동수단으로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다르게 다가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 운전에 집중하느라 앞차의 꽁무니만 쳐다보게 됩니다. 간혹 크루즈에 걸어놓고 잠시 창밖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때는 눈의 피로만 푸는 정도지 경치를 감상하는 눈이 안됩니다. KTX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면 바깥 풍경을 오롯이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전철을 타거나 시내버스를 타고 도심을 가로지를 때 보는 풍경과는 또 다른 감흥입니다.


'보이는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고 싶은대로 보인다'는 것이 맞는 듯합니다. 그렇게 보고 싶기에 그렇게 보일 뿐일 겁니다. 그것은 내 안의 나를 표현하는 표현형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버스를 타고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 가슴과 눈과 머릿속에 한 장면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나의 기억과 맞닿는 그 무엇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눈에만 보이고 기억과 머릿속 추억과 이어지지 못하면 스쳐 지나가는 장면에 불과합니다.


버스 여행은 그렇게, 장소를 이동하는 수단을 넘어 기억과 추억을 깨우는 요람의 안락함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다 가끔은 고속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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