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사유와 정약용의 흠흠(欽欽)

by Lohengrin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벽화 중 하나로 꼽히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습니다. 1495년부터 1498년까지, 가로 880cm 세로 460cm의 거대한 벽면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의아해했습니다. 그림의 크기가 크기도 했지만, 정작 다빈치의 작업 방식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시대 작가 마테오 반델로는 다빈치의 작업 과정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어떤 날은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붓을 내려놓지 않다가도, 어떤 날은 4일 내내 붓 한 번 잡지 않고 그림 앞에 팔짱을 낀 채 인물들을 관찰하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면 단 한두 번의 가벼운 터치만 남기고 내려오곤 했다."


이 느릿한 행보는 곧 의뢰인의 불만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미 급한 수도원장은 그림의 의뢰인이자 후원자였던 루드비코 공작에게 그림이 너무 늦어진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빈치는 위트 섞인 날 선 대답을 남깁니다. "유다의 악당 같은 얼굴을 찾기 위해 모델을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상상 속의 그 악한 얼굴을 끝내 찾지 못한다면, 수도원장님의 얼굴을 모델로 써야겠군요."


다빈치에게 예술은 단순히 색을 입히는 ‘손의 노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지독할 만큼 치열한 ‘생각의 노동’이었습니다. 인물 하나하나의 표정, 손가락의 미세한 각도,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 그리고 배신이라는 충격적인 선언 앞에 갈라지는 열세 명의 복잡한 심리 기제까지. 그는 머릿속에서 이미 수만 번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을 겁니다.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란, 사실 가장 밀도 높게 본질에 다가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작업은 손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몸소 증명했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깊은 전율을 주는 이유는, 벽면에 칠해진 안료의 색감이 아니라 그 이면에 켜켜이 쌓인 예술가의 고뇌와 사유의 깊이 때문일 것입니다.

최후의 만찬1.jpg

이러한 신중함과 깊은 사유의 미학은 1800년대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철학에서도 발견됩니다. 다산이 집대성한 형법 실무 지침서이자 법의학서인 '흠흠신서(欽欽新書)'는 무려 30권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입니다. 이 방대한 저술의 핵심은 제목에 쓰인 ‘공경할 흠(欽)’자 두 글자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다산은 말합니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흠흠이란 무엇인가? 삼가고 또 삼가는 것으로써 형을 다스리는 것이 근본인 것이다"


‘흠흠(欽欽)’이라는 단어 속에는 신중과 엄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극한 공경이 녹아 있습니다. 다산에게 법이란 단순히 죄를 묻고 심판하는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과 삶을 다루는 일이기에, 판결 내리는 자는 다빈치가 붓을 들기 전 고뇌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사유의 늪을 건너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법의 본질은 군림이 아니라 구원에 있어야 하며, 그 정의는 오직 인간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다산의 ‘흠흠’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법과 정의를 다루는 사법 체계가 권력과 이권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유별난 세계’의 주인 행세를 하는 모습을 목도합니다. 소위 ‘사법 카르텔’이라 불리는 견고한 성벽 안에서 법은 공경의 대상이 아니라 거래의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깜냥도 되지 않는 인물을 권력의 대리인으로 앉혀놓고 그 단물을 빨아먹으려던 이들이, 결국 자신이 휘두른 칼날에 되치기 당해 추풍낙엽처럼 몰락하는 현장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는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내리는 역사의 엄중한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오류는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오류를 줄이려는 ‘태도’에 있습니다. 다빈치가 유다의 얼굴을 찾기 위해 수년간 밀라노 거리를 헤맸던 것처럼, 정약용이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서른 권의 책을 써 내려갔던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끊임없이 ‘삼가고 또 삼가는’ 과정 속에 있어야 합니다.


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사회로 변해가는 과정은 더디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붓질보다 긴 사유를 선택했던 다빈치의 결단처럼, 우리에게도 속도보다 깊이를, 권력보다 공경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본연의 정의를 향해 맞춰가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길 위에서, 붓을 들기 전 팔짱을 끼고 고뇌하던 한 예술가의 뒷모습에서 삶을 대하는 가장 정직한 자세를 배우고, 판결에 앞서 옳음과 정의의 천칭을 들어 올리는 디케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갑상선암 수술, 4년 경과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