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영양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고칼로리 음식이 문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 이제 결핍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멸된 감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뇌과학과 분자생물학의 렌즈로 들여다본 우리 몸의 진실은 사뭇 다릅니다. 우리 몸은 '성장'과 '보존'이라는 두 가지 알고리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저울질을 하는데, 현대의 끊임없는 영양 공급은 우리 몸을 오로지 '성장 모드'에만 강제로 머물게 합니다.
성장은 젊은 시절에는 생명의 축복이지만, 노년기에 접어든 세포에게는 재앙의 전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 안에는 mTOR(mammalian Target of Rapamycin)라는 단백질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mTOR는 세포 내의 에너지 상태를 감지하여 단백질 합성을 촉진하는 일종의 '성장 사령관'입니다. 음식이 풍족할 때 이 사령관은 기세 좋게 깃발을 흔들며 세포의 크기를 키우고 분열을 독려합니다. 그러나 이 가속 페달을 멈추지 않고 계속 밟으면 어떻게 될까요? 세포 안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부산물과 불량 단백질, 즉 '세포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노화의 실체이자 시작입니다.
노화를 억제하고 생명의 생기를 되찾는 마법의 주문은 역설적이게도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음식을 적게 먹는 '식이 제한(Dietary Restriction)'을 실천할 때, 세포 내 에너지는 일시적인 고갈 상태에 빠집니다. 이때 세포의 에너지 화폐인 ATP가 줄어들고 AMP가 늘어나면, 우리 몸의 정교한 에너지 감지기인 AMPK(AMP-activated protein kinase)가 번쩍 눈을 뜹니다. AMPK는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는 현명한 관리자입니다. 그는 등장과 동시에 성장 사령관인 mTOR의 활동을 중단시킵니다. "지금은 덩치를 키울 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내부를 정비해야 할 때"라고 선언하는 것이죠. 이때 비로소 우리 몸의 가장 경이로운 시스템 중 하나인 '오토파지(Autophagy, 자가포식)'가 가동되기 시작합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주제이기도 했던 '오토파지'는 말 그대로 '자신을 먹는다'는 뜻을 지닙니다. 세포 안에 쌓인 노후된 소기관, 변성된 단백질, 침입한 바이러스 등을 세포 스스로 주머니(자가포식포)에 담아 분해한 뒤, 이를 다시 새로운 에너지원이나 단백질 재료로 재활용하는 경이로운 시스템입니다.
이를 일상에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 먹어 냉장고가 포화 상태가 되고 거실에 쓰레기가 쌓인 집에서, 외부 배달을 잠시 끊고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자가 정화 과정을 통해 세포는 비로소 '회춘'의 동력을 얻습니다. 특히 뇌과학적 관점에서 오토파지의 활성화는 치명적입니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 같은 찌꺼기를 제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식이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고도의 '뇌 청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식이 제한의 효능은 청소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장수 유전자'로 불리는 서투인(Sirtuin)은 세포의 설계도인 DNA를 보호하고 수선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소식으로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서투인이 활성화되어 우리 몸의 엔진 격인 미토콘드리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유전자를 가동합니다.
낡은 엔진을 새 엔진으로 교체하고, 연비를 높여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최적의 신체 기능을 유지하게 만드는 고도의 튜닝 작업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소식 → AMPK 활성화 → mTOR 억제 → 오토파지 가동 → 서투인 활성으로 이어지는 이 일련의 흐름은, 인간이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굶주림과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착한 '생존 최적화 알고리즘'의 발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무작정 굶어 체중을 줄이는 극단적인 방식은 무모합니다. 우리 몸은 그렇게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생명체는 균형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천칭과 같습니다.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반드시 반대편에서 대응 기재가 작동하는 '다면 발현성'이 나타납니다. 지나친 결핍은 오히려 면역력을 저하시키거나 다른 신체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건강한 노화'는 물리적 시간을 되돌리는 '회춘'과는 결이 다릅니다. 나이는 들었는데 몸만 젊은 시절처럼 쌩쌩하다면, 그것은 생태학적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며 반드시 어딘가에서 탈이 나기 마련입니다. 자연과학적 관점에서 노화는 다세포 생물이 설계한 가장 최적의 숙명론적 생존 방식입니다. 세포들이 서로 공생하며 찾아낸 최적의 효율적 해결책이 '죽음'이며, 그 죽음으로 향하는 경건한 과정이 바로 '노화'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노화를 거쳐 죽음으로 가는 그 불가피한 과정을 조금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늦추고자 할 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강이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그 마지막 날까지 내 의지대로 숨 쉬고, 울고 웃으며, 팔다리를 움직여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소박한 자유를 지키는 일입니다.
그 결론은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건강하고 멋있게 늙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것은 먹는 것에 탐욕을 부리지 않고,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적절히 움직여 몸을 깨우고, 주의 깊게 사색하며 끊임없이 공부하는 삶입니다.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이 중용의 도(道)야말로 우리가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끝까지 실천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워지는 생명의 신비, 이제 다시 '절제'라는 이름의 새로운 알고리즘이 놓여 있습니다. 실천할 일만 남았습니다.